한국 사람들이 만나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한국이 부쩍 잘 살게 된 후 외국인들도 우리말 인사를 곧잘 한다. 산에서 만나는 미국인 등산객들로부터도 혀 꼬부라진 우리말 인사를 흔히 듣는다. “안녕히 계세요,” “안녕히 가세요”도 보편적인 작별인사말이다.
안녕은 한자어지만 “安寧하세요”라고 쓰지는 않는다. 김치처럼 모든 나라에서 통하는 순수 한국말이 됐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듣고 “네, 평안하고 강령합니다”라고 대답하는 한국 사람은 없다. 미국인들의 “헬로”나 “하이” 에 해당하는 부담 없는 인사말이다.
미국인들은 아침엔 “굿 모닝,” 오후엔 “굿 애프터눈,” 저녁엔 “굿 이브닝”으로 바꾸어 인사한다. 일본인들도 아침엔 “곤니찌와,” 오후나 저녁엔 “곤방와”로 다르게 인사한다. 그러나 “안녕하세요”는 아침저녁 구별이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도 쉽게 배워서 말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결코 흉내 못 낼 ‘한국식’ 인사말이 있다. 예전엔 없었던 인사말이어서 필자도 이해할 수 없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는 인사말이다. 주로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말로 이메일이나 인터넷 카페에 넘쳐난다. 어법상 전혀 맞지 않는 인사말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루가 된단 말인가? 우리 어법은 대개 주어를 생략한다. “(너는) 훌륭한 의사가 되라”는 명령문을 예로 들자. 이를 존대어로 바꾸면 “(당신은, 혹은 선생님은) 훌륭한 의사가 되세요”가 된다. 상대방에게 의사가 될 것을 지시하거나 격려하는 말이다.
“좋은 하루 되세요”는 “좋은 하루가 되라”는 명령문의 존대어이다. 변호사가 되라는 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건 몰라도 “좋은 하루가 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더구나 웃사람에게 명령 투로 말하는 것은 우리 어법에 어긋난다.
“좋은 하루 되세요”는 상대방이 그날을 즐겁게 보내기를 바란다는 뜻임을 누구나 안다. 그러나 뜻이 통한다고 아무렇게나 말하면 곤란하다. ‘되다’라는 말을 꼭 쓰고 싶으면 주어를 바꿔서 “(오늘이 선생님에게) 좋은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로 해야 적합하다.
한국인들만 사용하는 뚱딴지같은 인사말이 또 하나 있다. 전화를 끝낼 때 “들어가세요”라는 인사말이다. 이 말은 “좋은 하루 되세요”와는 반대로 주로 중·장년층이 자주 사용하고, 전화를 건 쪽보다 받는 쪽이 더 많이 쓴다. 이런 전화인사를 받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사무실이나 안방에서 통화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들어가라는 말인가? 상대방이 집 밖에서 통화했다 하더라도 들어가라, 말라할 권리가 있나? 그 말을 듣고 어딘가로 들어가는 사람이 전혀 없는데도 계속 회자되고 있는 이 하나마나한 인사말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했나?
과거(30~40년 전) 한국에 전화가 귀했던 시절에 생겨난 말이라는 설이 있다. 전화를 걸기 위해 시내의 노상 공중전화나 읍내 전화국까지 ‘나갔던’ 사람이 통화를 끝내면 전화 받은 사람이 이제 집으로 “들어가시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인데, 좀 미심쩍다. 유선전화뿐이었던 예전보다 셀룰러폰이 판치는 요즘 그 인사말이 더 유행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세대인 중장년들이 무선전화인 셀룰러폰을 사용하면서 통신병 군복무 시절의 무전기를 연상하고 “O중대 나와라, 오버”라는 호출신호에 빗대서 통화 끝에 “들어가라”고 말하게 됐다는 설도 있지만, 역시 억지다.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여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워낙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셀룰러폰 통화가 미지의 사이버 세계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간주하고 통화를 끝내면 그곳에서 퇴장해 지상의 본래위치로 ‘재진입’ 한다는 인식에서 ‘들어가라’고 말한다는 설도 있다. 세 가지 가설 중 가장 그럴듯하다.
어쨌거나, “좋은 하루 되세요”처럼 “들어가세요”도 불합리한 인사말이다. “안녕히 계세요”라는 작별인사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런 인사말들이 맞는다면 필자도 “오늘 칼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이제 들어가셔서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