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의 운명이 이렇게 순식간에 달라질 수도 있는가보다. 요즘 정맹금(61, 사진) 씨가 느끼는 마음이다. 20여 년째로 접어드는 미국생활을 돌아보면 기가 막히다.
“1992년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이민 올 때는 제법 돈을 많이 가져왔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도 가버리고, 저는 병으로 고생을 하고, 자식들도 뜻하지 않은 어려움으로 고생이 말이 아니고... 참 힘에 부치는군요.”
암이 재발해 지난 2월 수술 받고 키모 치료를 받느라 힘들고 정신이 없는 정 씨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인 손녀 니콜 양과 둘이서 센터빌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딱한 사연은 이렇다.
손녀가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며느리가 양육권을 포기하고 집을 나갔을 때 작은 아들은 워싱턴 DC에서 그로서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여파는 너무 컸다.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도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아들은 결국 파산해야 했고 사업체는 고스란히 잃었다. 게다가 갚아야할 빚은 잔뜩 쌓여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당시에도 성치 않았던 몸이었지만 정 씨가 나서서 조금이라도 도와야 했다. 남편은 2005년 사망해 이미 곁에 없었다. 한인 식품점에서 음식을 만들고 산후조리가 필요한 사람 집에 파출부로 나가고…. 최선을 다했지만 고생과 스트레스 때문인지 몸은 더 더 망가지는 기분이었다. 저소득자를 위한 보험 카드를 보건소에서 얻어 검사를 했더니 한쪽 가슴에서 다시 암이 발견됐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쪽에도 현재 나쁜 징후가 있지만 요즘은 거기에 신경 쓸 틈조차 없다. 당장 아파트 렌트비 조차 낼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아들이 좋지 않은 약을 했어요. 현재 수감 중인데 9월에 재판을 하면 추방당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태어난 손녀는 제가 돌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10월까지 3개월치 렌트비 조차 없어요.” 한달 렌트는 1,550달러. 석달치면 5,000달러 정도 되는데 정 씨에겐 천금이다.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방 하나짜리로 옮길까한다”고 대답했다. 비용은 조금 줄지 몰라도 아무런 대책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래도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 하고 있다.
“제 약값은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마련됩니다. 참 감사한 분들이지요. 그런데 렌트비 만큼은 방법이 없네요. 지금 저한테 너무 큰 돈이에요.”
며칠 전에 너무 손녀가 불쌍하고 힘들어 통곡을 했더니 손녀가 할머니 왜 그렇게 서럽게 우느냐고 핀잔 겸 위로를 하더란다. 니콜은 나중에 의사가 돼서 할머니가 같은 분들을 돕고 싶다는 아이다.
조금만 버팀목이 돼줄 분이 있다면 다시 힘을 내 열심히 살겠다는 정 씨와 손녀 니콜. 아직 니콜이 운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어서 손수 차를 끌고 본사를 방문했던 정 씨는 손녀의 손을 잡고 힘든 걸음으로 인터뷰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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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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