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다음 해인 1961년 5월 16일 새벽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자 윤보선 대통령이 “올 것이 왔다”고 말해 두고두고 논란을 빚은 똑같은 말이 지난 8일 밤 추석맞이 특별기획 ‘이명박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정치권을 강타한 ‘안철수 현상’에 대한 질문을 받은 이 대통령이 “우리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은 이어 “우리 정치권이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면서 “정치권에 대한 변화 욕구가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며 사뭇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했다. 이는 대통령이 시대와 민심의 흐름을 바로 읽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우려를 자아낸다.
안철수 교수는 “현 집권세력이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고 있다”며 “현 집권세력의 정치적 확장성에 반대한다”고 말했고 심지어 “1970년대 박정희 시대로 거꾸로 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안 교수가 비판한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세력의 중심은 바로 이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변화를 요구하는 민의를 대변한 안철수 현상과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것처럼, 마치 사돈 남 말하듯 한 대통령이야 말로 스마트 시대가 왔는데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대통령은 또 “정치권의 변화를 촉구하는 의미에서 거리를 두겠다”고 했다. 어느 누구보다 정치권 변화에 앞장서야 할 대통령이 변화를 촉구한다면서도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니 이율배반으로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정치의 중심인 대통령이 정치와 거리를 두고 어떻게 국민이 바라는 정치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론은 돌고 돌아 단 하나 정치권을 탓하기 전에 대통령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난 몇 년간 정치의 중심이면서도 정치를 모르는 대통령으로 인해 국리민복을 위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갈등과 대결의 정치가 판을 쳐왔다. 이에 실망한 국민이 안철수를 통해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 안철수 현상이다.
안 교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공언한 것도 아니고 그저 출마를 고민 중이라는 말 한마디에 정치권은 이내 혼비백산 했다. 난공불락의 철옹성 같던 박근혜 대세론도 일거에 무너졌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안 교수가 지지율이 자신의 10분의1밖에 안 되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하고 불출마 의사를 밝히자 한나라당은 안철수를 통해 표출된 민심을 헤아리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 “좌파 쇼”니 뮈니 하며 안철수를 깎아 내리느라 정신이 없다. 한 때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영입해야 한다며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던 안 교수가 반한나라당 입장을 밝히자 태도를 돌변해 좌파 운운하며 예의 케케묵은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은 비겁한 짓이다.
“올 것이 왔다”는 이 말을 우리 국민은 머지않아 귀가 따갑도록 다시 듣게 될 것이다. 내년 총선 결과가 나오면 한나라당으로부터 “민심 이반이 이 정도 일 줄은 정말 몰랐다. 결국 올 것이 왔다”며 탄식하는 목소리가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다. 변화를 거부하고 민의에 역행하는 현 집권세력은 반드시 준엄한 역사의 응징을 받게 될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이를 알리는 서곡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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