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선택한 게 지난 25년간 제가 한 최고의 선택입니다. 연기하는 게 즐거워요."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오직 그대만’에서 여주인공 정화 역을 맡은 한효주의 말이다.
7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한효주를 만났다. 그는 "보이는 데 보이지 않는 척하기가 답답했다"며 맹인 연기를 하면서 "촉각과 시각이 무척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영화는 밑바닥을 전전하는 전직 복서 철민(소지섭)과 시력을 잃어가는 여성이 시련을 견디며 사랑을 키워간다는 내용을 담은 멜로물이다.
정화는 사고로 부모와 시력을 잃은 비극적 주인공.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을 성추행하려는 직장상사의 추파를 웃음으로 견디는 인물이다.
그는 정화 역을 연기하기 "답답했다"며 말보따리를 풀어놨다.
"정화는 깊은 상처를 지닌 인물이에요. 그런데 늘 웃어야 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감정 표현이 쉽지 않았죠. 그때 즈음 실명(失明)하신 연극 배우분을 알게 됐는데, 너무나 즐겁고 씩씩하게 사시더라고요. 제가 부끄러울 정도였죠. 그분이 가진 슬픔은 엄청날 텐데, 슬픔을 보여주시지 않더라고요. 그 언니를 보며 많은 걸 배웠습니다."
아시아의 스타 소지섭과는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만나보기 전에는 "(소지섭도) 내게 ‘연예인’에 불과했다"고 말한 한효주는 "만나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인 배우"라고 곁들였다.
그의 연기에 대해서는 "놀라웠다"며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의 자연스러움에 더욱 신경을 쓰시는 것 같았다. 똑같은 장면을 5번 가도 모두 다른 감정을 보였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경탄했다.
한효주는 그간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했다. 대박을 터트린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동이’ 등을 통해 꾸준히 팬층을 넓혀왔다.
그러나 영화도 꾸준히 찍었다.
2005년 ‘투사부일체’로 데뷔한 그는 2006년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처음으로 주연 역을 소화했다. 저예산 영화 ‘달려라 자전거’(2008)에서는 평론가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2009년에는 영웅재중과 함께 텔레시네마 ‘천국의 우편배달부’에 출연했다. ‘오직 그대만’에서는 드디어 상업영화의 여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오랜만에 영화를 찍어 다소 낯설었어요.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까 아차 싶더라고요.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담을 느꼈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힘들고 낯설었어요. 준비하는 시간이 긴 건 좋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좀 힘들더군요. 우는 장면 등 감정을 표출하는 신(Scene)이 많았는데 전체적으로 밸런스를 맞춰서 감정을 잡는 게 힘들었어요. 커트와 커트 사이가 기니까 감정을 이어가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죠."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한효주는 지난 25년간 제일 잘한 선택이 "연기를 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연기하는 것 자체가 즐겁고, 연기 덕분에 "생활도 좋아졌고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제 나이에 이 일을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베풀 여력이 있겠어요. 밥은 제가 항상 삽니다."(웃음)
20대 중반의 나이로 드라마부터 독립영화와 상업영화까지 꾸준히 연기 지평을 넓혀온 한효주. "가진 재능보다 과대 평가된 측면이 있다. 드라마 덕을 봤다"는 그녀에게 롤모델은 없을까.
"특별히 없어요. ‘블랙스완’의 내털리 포트먼, ‘라비앙로즈’의 마리아 코틸라르의 연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코틸라르의 작품은 슬럼프일 때 여러 번 보며 희열을 느꼈죠."
그는 ‘한효주는 이럴거야’라는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순수하고 참한 이미지지만 극적인 맥락에서 꼭 필요하다면 "노출신도 찍을 수 있다"고도 했다.
아울러 그런 맥락에서 영화나 드라마나 어느 한 장르에 갇혀서 연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한곳에 치중하고 싶지 않아요. ‘난 영화만 할래’ 그런 건 절대 없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욕심껏 둘 다하고 싶어요. 드라마는 대중들로부터 피드백이 강하고, 밤샘 촬영이 계속되다 보니 나중에는 몰입도가 높아져요. 영화는 철저한 준비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조금 다르죠. 지금은 영화에 대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을 더 한 후 다시 드라마 쪽으로 가고 싶군요."
(부산=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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