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기 때문에 포기 못 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하지만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모든 걸 다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겁이 많은데 그 순간만큼은 두렵지 않아요. 극단적으로 말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배우 유아인은 진지하게 한단어 한단어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완득이’에서 주인공 완득 역을 맡은 유아인은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모든 일에는 "태도와 시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아인은 2003년 성장 드라마 ‘반올림’을 통해 데뷔했다. ‘결혼 못하는 남자’(2008)를 거쳐 큰 인기를 얻은 그는 ‘성균관 스캔들’(2010)을 통해서 대중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영화는 2007년 ‘좋지 아니한가’에 출연하며 인연을 맺었다. 꽃미남들이 대거 등장하는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2008)를 거쳐 장나라와 출연한 ‘하늘과 바다’(2009)에 출연했지만, 드라마처럼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다.
그런 유아인이 ‘대박’에 도전한다. 이번에는 영화 ‘완득이’를 통해서다. 김윤석과 호흡을 맞춘 ‘완득이’는 사제지간을 매개로 다문화, 교육 문제 등 사회 전반을 훑는 스펙트럼이 꽤 넓은 영화다.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려령의 동명 소설을 발판 삼은 이 영화는 107분의 상영시간 동안 경쾌한 발놀림을 유지한다.
현실보다 8살이나 어린 역할을 하는 기분에 대해 물으니 "부담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의 진로를 깨고 싶기에 도전했다"는 말이 돌아왔다.
"’성균관 스캔들’ 이후 사람들의 기대치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미지를 깨면 더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연기 변신’ 그런 거창한 말보다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당연한 순서를 따르지 않고 싶었어요. 무언가에 갇히고 싶지 않았죠. 그런 시점에 ‘완득이’ 시나리오를 만나게 됐습니다."
고교생 역할을 하면서 자신이 고교시절에 느꼈던 추억의 책갈피를 섣불리 꺼내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현실의 풍경을 담고자 ‘지금’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감성을 느끼려 "애썼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진짜 개인적이에요. 우리 때는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수다 떨었지만, 요즘은 뭐든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들 혼자 무언가 하면서 각자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분위기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뚜렷했죠. 저희 세대와는 무척 다른 풍경인데, 그런 문화가 부러웠습니다."
’완득이’는 그간 한국영화에 많이 등장하지 않았던 다문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욕설은 퍼붓지만 엇나가는 학생을 계도하는 마음씨 착한 교사가 등장하는 등 낡은 설정이 영화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다.
유아인은 "시나리오가 재밌지는 않았지만 잘 읽혔다"며 "뻔하게 흘러가는 측면이 있지만, 이야기에 대한 태도와 시각이 좋아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했다.
"유쾌하면서 억지스럽지 않고, 저렴한 웃음이 없었어요. 큰 이야기가 없었지만 작은 플롯들의 연결을 따라가는데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고교생 역할을 소화한 그도 역시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쳤다. 여느 학생들처럼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했고, 수업시간을 지루해했다. 그러나 그가 다른 학생과 달랐던 점은 "그렇게 싫으면 왜 다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것.
"’싫으면 왜 다녀’라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정말 많이 퍼부었어요. 당연한 듯 벌어지는 것에 대해 저는 어렸을 적부터 지금까지 ‘왜 당연한지’라며 질문을 던지곤 했죠. 그렇다고 ‘완득이’처럼 겉돌지는 않았어요. 공부를 못하지도 않았고요. 사회적, 심지어 정치적인 인간이기도 했습니다."(웃음)
그는 고교시절 지방에서 예술고를 다니다가 연예인이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예술고에 다녔지만,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를 그만뒀다.
"연기를 안 해보고 연기가 무언지 모르고, 배우가 안 돼 보고 배우가 무언지는 모르잖아요. 그때는 배우가 그냥 멋있고 존경받는 직업인 듯해서 되고 싶었어요. 배우는 처음에 얼굴 잘생긴 아이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인물이 ‘반반한’ 친구들이 얼결에 연예인이 되듯, 저도 그렇게 연예인이 된 경우죠."
그러나 정작 ‘반올림’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나서는 "어떤 배우가 될래?"라는 질문이 "본능처럼" 떠올랐다고 한다. 연기를 하면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벽에 부딪혔다.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연기에 대한 흥미를 잃은 그는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갔다. 생각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결과물은 저예산 독립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2007)의 출연으로 이어졌다.
"그때 배우라면, 희소한 존재,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예술에 심취해 있기도 한 시기였어요. 무언가 방향을 모색해야 했고, 그 모색의 답안이 바로 독립영화였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생활하는 자의 곤궁함이 그를 찾아왔다. ‘반올림’ 이후로 광고 한편 찍은 적이 없다는 그는 20대 초반을 경제적, 심리적 밑바닥에서 보냈다고 한다.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이후에는 모든 걸 자신이 책임진 그는 아무리 어려워도 부모님에게 손을 빌리지 않았다.
"지방 출신이 서울에 올라와 혼자 생활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집세도 밀리고 가스도 끊겼죠. 일년에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됐습니다. 가끔 출연료를 받아도 방탕하게 그 돈을 썼던 것 같아요. 아무리 어려워도 부모님에게는 절대 의지하지 않았어요. 그런 ‘독립적인 태도’가 지금의 자산이 된 것 같아요. ‘나 연예인할 거야, 엄마 도움 필요 없어, 내 인생은 엄마가 책임지지 않아도 돼’라고 호기롭게 말하고 집을 나왔었죠. 그런데 어떻게 의지해요.(웃음) 그간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런 경험이 다 좋은 자산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동년배의 배우 중에 주목할 만한 배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파수꾼’의 "이제훈"이라며 "그 영화를 보고 아차 싶었다. 저런 영화에 출연했어야 했는데…"라고 아쉬워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운명이란 걸 믿는다"며 "모차르트가 되고 싶지 살리에르가 되고 싶지는 않다. 어느 정도의 재능은 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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