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튀는 캐릭터를 내세워 흥미로운 사랑이야기로 공감을 끌어낸 ‘미술관 옆 동물원’(1998). 손자에 대한 외할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을 다룬 ‘집으로’(2002)….
가벼운 발걸음으로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엮어냈던 이정향 감독이 9년 만에 신작 ‘오늘’을 통해 복귀했다. 남녀나 할머니의 사랑 같은 보편적인 주제보다는 겉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용서’를 화두로 내세운 영화다.
"실수하는 것은 사람이고, 용서하는 것은 신의 몫"이라는 영국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시구로 요약될 수 있을 이 영화는 용서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가에 대해 119분간 ‘설명한다’.
약혼자를 뺑소니 사고로 잃은 다혜(송헤교). 힘겹게 가해자 소년을 용서한 그녀는 사고가 발생한 지 1년 후 ‘용서’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아버지의 반복되는 폭력행위를 피해 집을 나온 지민(남지현)도 함께한다.
그러나 촬영이 진행될수록 용서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한 다혜는 우연히 자신이 용서한 17살 소년이 또다시 동급생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무거운 화두가 약 2시간 동안 영화를 짓누른다. 전작들에서 밝고 따뜻한 이야기를 확신있고 정확한 화술로 풀어냈던 ‘이야기꾼’ 이정향 감독은 ‘용서’라는 무거운 화두 앞에서는 다소 주춤댄다.
그리고 묵직한 화두를 자꾸 설명하려 하니 비워도 될 법한 영화적 공간에 대사들이 물밀듯이 들어선다. "용서란 미움을 없애는 게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미움을 마음의 가장자리로 밀어내는 거다", "대책 없는 용서는 죄악이다"처럼 비슷한 내용의 대사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된다.
이 감독은 ‘오늘’의 제작보고회에서 "지난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생각의 폭과 깊이가 더해졌다. 그래서 생각의 각도가 달라지면서 내용상의 수정이 계속 이뤄졌다"고 말한 바 있다. 숙고하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을 수는 있지만 그 생각의 조각들이 영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지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는 있다. 특히 송혜교의 연기가 눈에 들어온다.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지만 세밀한 감정 변화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다혜라는 인물을 힘을 쭉 뺀 채 연기했다.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파괴력 있는 감정 분출도 선보인다. 남지현의 과장하는 연기는 다소 아쉽지만, 그래도 이 어린 배우(16)는 몇몇 장면에서 좋은 눈빛과 표정, 감정을 보여준다.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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