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50’이라는 말이 미국언론에 회자됐다. 정확하게는 ‘15 O’이고 더 정확하게는 ‘15 October’(10월 15일)이다. 바로 오늘이다. 뉴욕에서 소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금융권 규탄시위가 시작된 지 꼭 4주째 되는 오늘, 미국 내 대도시들은 물론 서울을 포함한 전 세계 650개 도시에서 ‘점령’ 시위가 일제히 벌어질 예정이다.
지난 9월 17일 30여명의 젊은이들이 금융자본의 비도덕성, 날로 심화되는 빈부격차, 청년 실업자 사태 등 자본주의의 폐해를 규탄하며 뉴욕 월 스트리트의 주코티 공원에 텐트를 치고 시작한 농성시위가 요원의 불길처럼 지구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진원지인 뉴욕에서는 이미 시위자 7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되는 등 점차 격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들은 ‘1%에 항거하는 99%’를 자처한다. 미국의 부는 1% 소수가 점유하고 나머지 99%는 그들에게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며 그들의 말 한마디에 가을낙엽처럼 일자리에서 우수수 떨어진다고 개탄한다. 그래서인지 월가점령 시위는 올봄 튀니지에서 한 청년의 분신자살로 촉발된 민주화 시위를 뜻하는 ‘아랍의 봄’에 빗대어 ‘미국의 가을’로 불리기도 한다.
시위자들은 “1% 부류의 탐욕과 비리를 99%가 더 이상 용납 않는다”고 단언한다. 이들은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를 겪었을 뿐 아니라 최근엔 사상초유의 국가부도 사태까지 낼 뻔 했는데도 바로 그런 사태를 유발한 1%인 월가는 탐욕을 여전히 버리지 않는 반면 나머지 99%는 그 탐욕의 대가로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을 고스란히 떠안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999년 가을 WTO(세계무역기구) 총회를 반대하는 극렬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시애틀에서도 당시를 방불케 하는 과격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12년 전엔 한국을 포함한 외국에서 몰려온 원정시위자들도 합세해 경찰과 충돌하면서 다운타운이 한동안 전쟁터가 됐었다. 사태를 깔끔하게 진압하지 못한 폴 셸 당시 시애틀 시장은 재선출마를 아예 포기했다.
데모의 세계적 선진도시인 서울도 잠잠할 리 없다. ‘월가 점령’의 한국판 집회인 ‘여의도 점령’ 시위가 오늘 오후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벌어진다. 금융 소비자협회, 투기자본 감시센터 등 4개 시민단체가 주도하는 이 시위는 월가 점령 시위의 본래 취지처럼 금융문제에 초점을 맞춰 금융관료 책임 규명, 금융자본 피해자 구제 등을 요구할 예정이란다.
월가 점령 시위가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순수성이 희석된다는 지적도 있다. 재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시위대의 지지 확보를 꾀한다는 말도 들린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분노는 금융 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이라며 시위대를 간접적으로 두둔했다. 시애틀 시위에도 반전, 인권, 환경 등 다른 취지의 단체들이 끼어들고 있다.
서울 시위는 한 술 더 뜬다. 여의도 시위와는 별도로 ‘99% 공동행동 준비회의’가 주도하는 ‘서울 점령’ 데모가 오늘 시내에서 벌어진다. 참여단체도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 전국 민주노총, 전국 진보연대 등 30여개에 달하며 요구사항도 한-미 FTA 반대, 4대 강 사업 반대,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개정 등 정치적, 이념적인 것들이 많다.
월가 점령 시위자들이 말하는 99%는 ‘못 가진 다중’이다. 시위 자체가 대졸 실업자들의 분노에서 비롯됐다. 자본주의의 본산이자 ‘탐욕과 부패의 온상’인 월 스트리트가 자연히 공격 타깃이 됐다. 하지만 ‘서울 점령’ 시위는 떡 본 김에 제사지내는 형국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세계적 추세가 된 점령시위를 흉내 내며 본질과 동떨어진 요구를 내세우기 때문이다.
최고급 금은 순도 99%인 24k이다. 그보다 저급은 은이나 구리 등 불순물이 섞인 18k이나 14k이다. 레닌,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등이 100% 동질사회를 표방하며 공산혁명을 주도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그들 자신이 새로운 1% 행세를 했고, 99%는 왕정치하 때보다 더 착취당했다. 14k나 18k가 1%의 위험소지를 안고 있는 24k보다 나은 건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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