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로 변한 스님
개운사 살 때 나는 항상 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정치나 돈이나 명예 따위에는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 개운사는 그 당시 법주사 문중스님께서 주지를 하셨기에 조계종에 회의를 한다든지, 무슨 일이 생기면 법주사와 불국사 그리고 금산사에 계시는 큰스님들께서 자주 오셔서 머물러 계셨다. 내가 젊은 나이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저기 크고 작은 서울근교 암자에서 청탁이 더러 왔다. 초파일이나 백중 때가 닥치면 스님을 구해 달라는 것에서부터, 직접 스님께서 오셔서 도와달라고 하는 부탁이 왔다. 나는 그 때마다 내가 직접 가는 것보다는 다른 스님들을 추천해 보냈다.
내가 직접 가지 않고 다른 스님들을 추천해 보낸 이유는, 개운사가 비록 금전적이나 모든 면에서 나에게는 열악하지만, 그래도 우리 문중 큰스님들께서 자주 드나드시는 관계로 나 자신을 경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큰스님들께서 우리를 항상 보고 있기에 한 말씀이라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하시기 때문이다. 돈을 벌 때는 어렵지만, 쓰기 시작하면 순간인 것처럼 내 자신에 있어서도 공부해서 쌓아올리는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르지만, 잘못 될라치면 하루 아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른 밑에 산다는 것이 사사건건 간섭을 받으니까 우선 젊은 사람으로선 불편하게 느끼지만, 사실 세월을 오래 살다보면 모든 것이 귀감이 됨을 느낀다. 아무래도 단체생활을 많이 하고 어른들을 많이 모셔보고 산 사람과, 그냥 아무렇게나 산 사람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먼 훗날 성장하면서 서서히 나타나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순간은 모른다.
정릉 산골짝에 있는 삼덕사 창건주 보살님은 집이 안암동 근교에 있는데, 나와 인연이 되어 그 집을 초대받아 간일이 몇 번 있다. 그 보살님께서는 나에게 그 절로 와 계셔달라고 여러 번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가지는 않고 그 절에 몇 번 다녀온 일이 있다. 하도 사정하게에 개운사에 있는 진수스님을 소개했다. 그 당시 진수스님은 군대를 갔다온지가 얼마 안되어 여기 저기 살 곳을 구하며 다닐 때 내가 삼덕사에 소개한 것이다.
진수스님은 나에게, 자기는 공수부대에 입대하여 비행기에서 낙하산도 많이 탔고 칼을 잘 쓰며, 표창도 잘 던진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는 ‘그 친구 운동을 꽤 좋아하는군!’하고 생각하며 그 사람을 소개할 때는 칼을 잘쓴다고 했다. 사실은 내가 직접 본 일이 아니기에 잘 알 수는 없지만 자기가 자랑하니 그렇게 믿는 수밖에....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미국을 오가며 설악산 신흥사를 참배할 기회가 있어 법당에 들르니 영단에 ‘진수’라는 스님의 이름이 눈에 뜨이는 것이 아닌가! 혹여 내가 아는 그 스님이 아닌가 싶어 위패 앞에 읍하고 반야심경 일편하고 돌아섰지만 왠지 석연치 않았다. 왜냐하면 “세상엔 동명이인同名異人이 하도 많으니까 다른 사람일수도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공림사 선방에서 정진할 때, 도반인 구암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알고 있던 진수스님이 틀림없었다. 순간 ‘생생히 내가 알던 사람이 위패로 변해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라 또한번 무상함을 느꼈다. 경허 큰스님께서는 말씀하신 “사람의 목숨이란 풀끝에 이슬 바람 속에 등불이라”고 하는 말씀을 다시 실감했다.
Oct 16. 2011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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