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구한 신파 멜로로 정면돌파..알츠하이머 증상 회자
구구한 신판 멜로가 안방극장에 조용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중년남성들이 가세하지 않았기에 아직 태풍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층과 여성 시청자 사이에서는 이 오랜만에 등장한 최루성 정통 멜로가 다각도로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여주인공 수애와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알츠하이머 증상이 있고, 그 뒤에는 김수현이라는 베테랑 작가가 있다.
SBS 월화극 ‘천일의 약속’이 한동안 안방극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정통멜로 드라마의 부활을 알리며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일 방송된 6회는 전국 17.2%, 수도권 19.7%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시간대 1위며 체감 인기는 그 이상이다.
◇사면초가 상황에 내몰린 비련의 커플 = 김수현 작가는 사면초가 상황에 내몰린 비련의 커플에게 도망갈 구멍을 전혀 주지 않고 정면으로 슬픔을 감내하라고 한다.
화사하고 발랄하며 행복한 기운이 넘실대는 로맨틱코미디만이 살아남았던 최근 안방극장 미니시리즈에서 ‘천일의 약속’은 용감한 작품이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팩션 사극 ‘공주의 남자’의 조정주.김욱 작가가 "무엇보다 비극적 로맨스가 관심을 받았다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자평했을 만큼 한동안 비극적 멜로 드라마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그런 상황에서 사극이라는 장치조차 없는 사방이 뻥 뚫린 현대극에서 구제가 불가능한 처지에 몰린 두 남녀의 사랑은 자칫 무모할 수 있는 시도였다.
하지만 관록의 작가 김수현은 전혀 새로울 게 없지만, 동시에 늘 새로울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 성격을 가진 비극적 멜로를 자신만의 색깔로 칠해 이 가을 상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고아의 가난한 여자와 명망 있는 부유한 집안의 남자는 처음부터 남자가 약혼녀와 결혼하기 전까지의 시간만을 약속하며 뜨겁게 만났고 데드라인 앞에서 창자를 끊어내는 슬픔 속에 이별했다.
이별한 직후 여자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를 알게된 남자는 파혼을 선언하고 여자 곁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남자의 약혼녀가 입덧을 한다.
신파 중의 신파다. 환장할 노릇이고 출구는 없다. 하지만 김 작가는 이 진부하고 답답한 상황을 리드미컬하고 힘있게 그려내며 시청자가 없는 출구를 찾는 데 빠져들게 하고 있다.
◇"내가 수애야" = ‘천일의 약속’이 초반 화제몰이에 성공한 데는 수애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서연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자극적인 설정이 큰 몫을 했다.
이제 지난한 가난의 터널을 갓 통과해 안도의 숨을 내쉰 예쁘고 젊은 아가씨가 ‘기억을 잃어간다’는 것은 측은지심을 유발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
여기에 아직 초기 단계인 서연의 증세가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건망증과 비슷해 시청자가 자신을 수애에게 대입시키며 감상하는 효과(?)도 내고 있다.
세 아들을 둔 36세 주부 이서경 씨는 "요즘 주변에 ‘내가 수애야’라고 말하는 엄마들이 많다. 휴대폰이나 자동차키, 가스불 켜놓은 것을 잃어버리는 등의 증상은 주부들이 흔히 경험하는 일들"이라며 "뻔한 멜로인데 수애의 상황과 병이 흥미를 끈다"고 말했다.
32세 직장인 김지현 씨는 "’천일의 약속’ 방송 다음 날이면 동료끼리 전날 수애의 증상에 대해 얘기하는데 모두 자기 일 같다며 공감한다"며 "건망증까지는 웃고 넘기지만 만약 수애처럼 기억을 잃어가게 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고 그것 때문에 드라마에 빠져든다"고 말했다.
여자들이 수애에게 자신을 대입하는 반면, 젊은 남성들은 수애의 미모와 연기에 매료되고 있다.
SBS ‘뿌리깊은 나무’에 출연 중인 탤런트 한상진은 "우리 드라마 외에 ‘천일의 약속’을 빠짐없이 보고 있는데 젊은 남자들에게 대단한 화제다. 모두 여주인공을 불쌍하게 여기면서 저런 여자친구가 있다면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새롭지 않은 이야기인데 참 재미있다. 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같다"며 "여주인공 수애 씨의 절절한 연기가 젊은 남성들을 매료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명품패션.김수현표 대사 등 화제 = 드라마가 관심을 모으면서 스토리 외적인 면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수애는 극중 가난한 캐릭터의 상황과 맞지 않는 명품패션을 선보였다는 이유로 네티즌으로부터 뭇매를 맞았고 결국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또 김수현 작가는 특유의 속사포 같고 긴 대사에 대해 일부에서 불편함을 드러내자 지난달 30일 트위터를 통해 "내 말투가 이상하고 거슬리니 고쳐달라는 어느 분이 있는데 40년 넘게 그 말투로 일했고 그 말투가 바로 김수현이니 어떡하나요. 그냥 외면하고 편해지라 했습니다"라고 받아쳤다.
그는 "그렇게 힘이 들면 김수현 드라마를 외면하는 방법이 있어요. 나한테 말투 고치라는 건 가수한데 딴 목소리로 노래하란 겁니다. 그건 불가능해요. 내 대사가 바로 김수현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이미숙과 박유환, 문정희 등 조연들의 하나하나 살아있는 캐릭터도 인기몰이 중이다. 각자의 상황을 적극적이고 세밀하게 드러내는 이들 캐릭터의 배치로 드라마는 풍성함을 더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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