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영생교회에서 북한어린이돕기 찬양콘서트
’사랑이 저만치 가네’, ‘토요일은 밤이 좋아’, ‘당신도 울고 있네요’ 등의 히트곡으로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김종찬이 목사 안수를 받고 필라델피아에 온다.
김종찬 목사는 오는 12월 10일 오후 7시 영생교회에서 북한어린이 돕기 찬양 콘서트를 개최한다.
1986년 데뷔해 1997년까지 활발한 가수활동을 했던 그는, 이후 사업가로의 변신을 꾀했지만 바로 IMF 사태로 어려움을 겪으며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그는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외제차를 고집했었다. 화려한 무대의 조명과 팬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다.
“가수를 안 해도 나는 탄탄대로인 줄 알았습니다. 그때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아요? 40대는 사업가로 성공하고, 50대에는 정치인으로, 60대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수 김종찬은 1997년 가수 활동을 접어두고 가맹점 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98년 IMF를 겪으며 사업은 부도가 났고, 여러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최고의 자리에서 곤두박질친 그는 미움, 분노, 증오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도관 한 명이 사람들을 모으더니 찬송을 부르고 있었어요. 그 찬송이 바로 미션스쿨에서 즐겨 부르던 찬송 234장 ‘나의 사랑하던 책’이었지요”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고 3일에 한 번씩 열리는 그 자리에 네 번째 참석한 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 기도를 드렸단다.
“회개 기도와 함께 이전에 돈과 명예에 집착한 삶, 남을 시기하고 미워했던 부질없고 추악한 것들이 기억에서 지워졌어요”라고 회상하는 김종찬 목사는 이때 하나님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단다. 한 가지는 ‘나머지 인생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다’, 또 한 가지는 ‘세상 노래를 부르지 않고 주님만 찬양하겠다’는 것 이었다.
그는 구치소에서 나온 후 밤무대에 서기만 하면 1억 원을 선불로 주겠다는 등의 행사 제의가 있었지만 단호히 거절하고 백석대에 입학,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7년간 신학을 공부하며 교도소, 양로원, 장애인시설 등 어디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곳이면 달려가 찬양을 불렀고 3,000여 회의 찬양사역 일정을 소화했으며 4집 찬양음반 ‘생명의 빛’도 발매했다. 그의 소중한 가족들도 가장의 뜻을 지지해줬다.
지난 10월 22일 한국 할렐루야교회(담임 김상복 목사)에서 진행된 한국독립교단 및 선교단체협의회 목사 안수식에서 안수 받은 그는 "미래를 지향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 찬양으로 말씀을 세우는 그런 교회, 세상이 존경하는 교회, 성도, 목사가 되고자 한다"고 전했다.
김종찬 목사는 10일 영생교회 북한어린이돕기 찬양 콘서트를 비롯해 크로스 선교회(구 SAM-USA)에서 주관하는 ‘북한어린이 돕기를 위한 자선음악회’ 를 뉴욕, 뉴저지 등 동부 지역을 찾아 찬양과 함께 지역교회에서 자신의 간증을 전할 예정이다.
조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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