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을 시작하며
연전의 일이다. 왕년의 직장 동료 한 사람이 어느 날 난데없이 전화를 해왔다. 서울 어느 대학의 교수로 있는 사람이다. 미국 출장 중인 데 조금 전 뉴욕을 출발하여 필자가 사는 필라델피아로 가는 중이니 점심 나절에 잠시 얼굴이나 보자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만사 제쳐두고 필라델피아 시내로 달려가 펜실바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서점 앞 노변 탁자에서 몇 년 만에 해후하였다.
가족의 안부를 서로 묻고 나서, 그가 내게 한 가지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말인즉슨, 1년 후에 안식년을 맞아 한 해 동안 미국에 와 있을 예정인 데, 집을 하나 구입해서 지내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아파트든 일반 주택이든 세를 살면 매달 적지 않은 돈이 그냥 월세로 사라지게 될 테니 아깝다. 차라리 집을 하나 사고 그 월세 상당액으로 융자금을 갚으면 어떻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대한 나의 반응은 이랬다. 집을 살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우선 융자를 받을 수 있을 지 없을 지에 달려 있지만, 융자 가능 여부를 떠나 미국에서 주택은 5년 이상 보유할 계획이 있을 때 사는 것이 합리적이다. 집을 사고 파는 과정에 돈이 많이 들어, 한 해에도 10%, 20% 집 값이 뛰는 주택 경기 과열 상태라면 모를까, 평상 상태에서는 단기간 보유했다 판다면 전체적으로는 손해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집을 살 때 그리고 팔 때 드는 돈을 합하면 집 값의 10%는 족히 된다. 어느 주, 어느 카운티 혹은 도시(타운십/시티/버로)에 있는 집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집을 살 때 거래세(transfer tax), 소유권 보험료(title insurance), 각종 검사비, 융자 관련 비용 등으로 집 값의 3%-4% 상당의 돈이 든다. 팔 때는 부동산 중개 수수료 만으로도 집 값의 5%-6%, 여기에 거래세로 보통 1%, 수리가 필요한 경우 그 비용으로 적지 않은 돈과 약간의 잡비가 나가게 된다. 이를 다 계산에 넣으면, 집 값이 적어도 10%는 오른 다음에 팔아야 본전이라도 건지게 된다. 부동산 경기가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는 시황이라면 1년만 보유했다 팔아도 비용을 건지고도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보통 때는 한 두 해 사이에 집 값이 10% 이상 오른다는 보장은 없다. 5년 앞을 본다면 그 동안 많이 오를 가능성은 제법 크다. 그러니 중장기 보유 전망이 있다면 사도 좋다. 단기 보유 전망이라면 자제하는 게 좋겠다. 세를 사는 것이 오히려 싸게 먹힐 것이다.
앞에 든 왕년의 동료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종종 출장도 다니고, 안식년도 보내고 그런 사람이다. 이곳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 보니, 감히 집을 사는 건 어떨지 생각해 봤을 것이다. 아파트에 살면 매달 내는 월세는 그냥 사라지는 돈, 소득 공제 혜택조차 없이 날아가 버리는 돈인데, 집을 사고 내는 융자 상환금은 다만 얼마라도 꼬박꼬박 축적이 되고, 이자 및 재산세를 낸 것은 소득 공제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 부동산 거래나 투자에 대한 직접 경험 없이 막연히 교과서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주택 구입을 생각해 봤던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부동산에 관한 그의 이해는 10여 년 전 필자가 미국에서 처음 집을 살 때보다 오히려 낫다. 먼저 와 있던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지 한 달 만에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주인이 바뀌고 새 주인이 월세를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올리겠다는 바람에 앞뒤 돌아볼 여지 없이 무조건 집을 사겠다고 나섰다. 그 타운 내에 있는 집을 사야만 12학년에 올라갈 아이가 전학을 안 해도 된다는 것, 12학년 되어 전학하면 대학 가는데 애로가 많다는 것, 집값에 입지(location)와 학군이 매우 중요한 변수라는 것, 잘 가꿔진 집과 그렇지 않은 집은 가격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것, 부엌과 욕실이 일차적인 평가 포인트라는 것 등에 대해 이해하기는커녕, 들은 바도 없이 집을 사러 나섰고, 결국 샀다. 사고 나니 잘못 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교통량이 많은 도로에 위치해 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 얼마 후 부동산 중개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미국 부동산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2년 반 만에 그 집을 팔고 이사를 하였다. 다행히도 첫 집을 사고 팔던 그 때는 부동산 붐이 크게 일 때라, 제법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 때로 돌아가 이제 미국 부동산에 관해 초보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경험이많은 사람이라도 보면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매주 한 차례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제공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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