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절대 권력을 누릴 것 같던 김정일이 지난 주 허망하게 갔다. 공식 나이 69. 사인은 심근경색. 결국 아버지 김일성과 같은 심장마비다. 북한 방송 발표 직후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졌지만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심장이 약한 것은 김씨 집안 내력이고 김정일은 이미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 김일성은 그래도 소시 적에 독립 운동을 한다고 만주 벌판을 뛰어다니며 체력을 단련했지만 김정일은 어려서부터 술과 여자로 날을 지샜으니 아버지보다 13년 일찍 죽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로써 한민족이 지구상에 출현한 후 가장 많은 동족을 죽인 두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하나는 한민족 최대비극인 6.25를 일으켜 수백만을 총칼로 살해했고 다른 하나는 자국민 수백만을 굶겨 죽였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최고급 코냑을 기쁨조와 함께 마시며 세계 각국의 명 요리사를 초청해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인 히틀러와 스탈린도 국민의 고혈을 짜낸 돈을 개인적인 호사를 위해 쓰지는 않았다. 그런 김씨 부자를 추종하거나, 그를 비판하는 사람을 욕하는 사람들이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아직도 인류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쨌든 김정일은 죽었고 지금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앞으로 북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점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김정은이 중국식으로 점진적인 개혁과 개방을 추진, 경제를 발전시키고 더 나아가 공산 왕조를 폐지한 후 남북한 합동 자유 총선거를 통해 통일 민주 한국을 세우는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최대 경사겠지만 현실성은 매우 낮다.
다음 시나리오는 김정은이 순조롭게 권력을 승계해 안정을 유지하면서 남북이 평화공존을 하는 것이다. 핵 개발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남한과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 남북 경협이나 이산가족 상봉, 남북 교류가 지금보다 훨씬 활발해지게 된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김정은이 과거 김정일과 똑같은 정책을 펴는 것이다. 핵을 걸고 한국과 미국과 협상을 해 원조를 받아낸 후 다시 약속을 깼다가 얼마 시간이 지나면 ‘민족 화해 운운’ 하며 다시 유화 제스처를 써 다시 돈을 뜯어내고를 반복하는 것이다.
네 번째는 김정은의 권력 승계가 순탄치 않고 북한 내부가 동요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북한은 내부 단합을 위해 대남 도발을 감행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에 망명해 있는 김정남이 돌아오고 고모부이자 실세인 장성택과 김정은이 북한판 수양대군과 단종 드라마를 쓰게 되면 북한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김정일 사후를 놓고 이런저런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김정일이 죽은 사실을 이틀 후 북한 방송 보도로 알만큼 외부의 북한에 대한 정보는 미약하다. 그런 판에 북한의 앞날이 어떨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의 역사는 독재에서 민주로, 폐쇄에서 개방으로, 정체에서 개혁으로 흐른다는 사실이다. 역사는 느리디 느린 시냇물처럼 더디 흐르다가도 어떤 때는 천둥소리 나는 폭포로 변하기도 한다. 올 초 튀니지에서 시작된 작은 시위가 1년이 채 안 되는 사이 벤 알리와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예멘의 살레를 몰아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거기다 희대의 살인마 김정일까지 죽었다.
김정일이 죽었다고 하루아침에 민주화가 될 것으로 조급한 기대를 해서도 안 되겠지만 한반도 북쪽 구석에만 공산 왕조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고 믿는 것은 역사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미 역사적으로 용도 폐기된 왕조와 공산주의의 결합체는 더욱 그렇다.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평양의 봄’을 기다리자.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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