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 무용론 - 데스크의 창 황양준 편집국장
시애틀한인회가 2011년을 마감하는 정기총회를 파행적으로 진행했다는 보도가 나간 20일 아침 본보 편집국에 전화가 걸려왔다. 시애틀 한인사회의 올드타이머로 존경 받는 그는 대뜸 “한인회 기사 좀 그만 쓰라”고 말했다. “한인들의 대표성도 없을뿐 더러 본연의 역할로 내세우는 봉사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맨날 이전투구식 자리싸움만 하는 한인회에 한인들이 얼마나 식상해 하는지 알고나 있느냐”고 다그쳤다.
그는 킹 카운티와 스노호미시 카운티에 한인이 최소 10만명은 되는데 한인회 투표권을 가진 정회원이 100여명이면 참가율이 0.1%에 그쳐 한인을 대표한다는 명분이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매주 한차례 모이는 등산회도 등록 회원이 100명이 훨씬 넘고 인터넷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만도 300명이 넘는데 규모가 일개 동호회만도 못한 한인회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냐”고 따져 물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지난 17일 시애틀연합장로교회에서 열린 정기총회에는 20달러의 연회비를 낸 정회원 61명이 참석했다. 이날 총회에는 차기 회장 문제로 이광술 현 회장과 부정선거 수습대책위(위원장 강동언)간에 충돌이 예고돼 있었던 만큼 많은 회원들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었다. 더구나 표결에 대비해 노인회 회원들까지 동원한 숫자가 이 정도라면 그야말로 ‘그들만의 잔치’인 셈이다. 그 알량한 잔칫상에서도 한국 시골 반상회에서조차 볼 수 없는 추태가 벌어지는 모습에선 말문이 막혔다.
평소 점잖아 보였던 한 인사는 반대측 인사가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하자 “물러나라”고 고함을 질렀다. 마치 사회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예비군 훈련장에만 가면 엉뚱해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사회자를 제치고 회장이 단상을 독점해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면서 각종 현안과 문제점을 날치기 처리하고선 “90%이상의 찬성으로 여러 가지 잡음을 모두 깨끗이 정리했다”고 자화자찬하는 모습은 모두를 낯뜨겁게 만들었다.
대표성이 없다 치더라도 한인회 설립 목적 가운데 가장 큰 봉사활동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시애틀한인회가 만든 정기총회 회보에 20페이지 이상을 할애한 활동사항을 보면 각종 행사를 찾아 다닌 것이 대부분이고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고 한인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실질적 봉사기관으로써의 활동은 찾아보기 어렵다.
워싱턴주 양대 한인회라고 말하는 타코마한인회 역시 차기 회장 문제를 둘러싸고 한인들의 뜨거운 눈총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메일 폭로전으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 ‘한인회 무용론’이나 심지어 ‘자발적인 한인회 해체론’이 나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커뮤니티의 대표기관’을 자처하는 한인회 같은 단체는 이민역사가 긴 중국이나 일본 커뮤니티에는 없다. 한인회를 한인사회 대표단체처럼 여기는 풍토에는 한국정부에 곁눈을 팔고 있는 한인회 인사들의 명예욕도 문제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는 핑계로 한인회를 특별 대우해주는 듯한 한국정부의 자세도 한 몫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광술 회장은 지난 17일 정기총회 인사말에서 “송영완 총영사는 종전 총영사들과 달리 특이한 분이어서 이명박 대통령이 시애틀을 방문할 때 사전에 한인회장과 상의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정부가 한인회를 특별 대우해주지 않았다는 우회적인 비판이다.
모든 한인회가 그렇지는 않지만 고작 100명도 안되는 1세대 인사들이 본연의 봉사활동보다 자리에 연연하며 한국정부 등으로부터 대접을 받겠다는 한인회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젠 부동산ㆍ그로서리ㆍ세탁소 등 업종별이나 등산ㆍ골프ㆍ음악ㆍ미술ㆍ문학 등 취미 위주의 동호인 모임들이 커뮤니티에서 더 활발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인 비즈니스를 대표하는 상공회의소 등이 더욱 힘을 발휘하고 2세까지 참여해 유권자 운동 등을 주도하는 한미 연합회(KAC) 등이 커뮤니티 대변자 역할을 해야 할 시대가 왔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어 어떤 결론이 내려질지 짐작할 수 없지만 기존 한인회들이 뼈를 깎는 자성과 평가로 역할과 목적, 활동 등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경우‘백해 무익한 단체’로 낙인 찍혀 한인들에 의해 퇴출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june66@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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