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형은 나보다 3살이 많다. 지금은 유치원이라는 것이 있고 조기교육도 시켜야 된다고 하여 일찍 숫자를 깨우쳐 주지만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그럴 엄두를 못 냈다. 그 시절엔, 옷감을 짜기 위해 여름이면 모시나 삼배의 실을 호롱불 밑에서 옹기종기 모여 만드느라 어머니들은 참으로 바빴다. 뿐만 아니라, 빨래를 할라치면 그냥 입을 수 없어 빨아서 말렸다가 풀을 먹이고 또 다시 물을 살짝 뿌려 고이 접어 보자기로 싸서 밟고, 다듬잇돌에 올려놓고 밤새 두드리는 소리가 이 집 저 집에서 났다. 아침이면 먼동이 트이기 직전에 옷을 밖에 내 놓아 이슬을 맞힌 다음 옷가지들의 마지막 손질로서 다리미에 숯불을 담아 다림질을 하여 옷의 주름을 폈다. 다림질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꼭 잡아주어야 한다. 힘이 없어 잡아주다 놓치는 날엔 숯불이 흩어져 옷이 망가져 혼난다.
일손이 모자랄 때는 이따금씩 나이 어린 우리에게도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한 번은 어머님께서 옷을 곱게 개어 보자기에 싸주며 우리 형제에게 밟아 놓으라고 하고 시장엘 가셨다. 형과 나는 상의하여 번갈아 형이 100번 내가 100번 밟기를 반복하는데, 형은 초등학교 2학년이니 숫자를 모두 알고 나는 학교에 다니기 직전이니 숫자를 50까지만 알았다. 그러나 서로 백 번씩 하자고 했으니 형한테 묻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형 100은 50번을 몇 번 해야 해?”하니 형은“응, 50번을 열 번하면 100이야?”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형이 이야기한대로 믿고 빨래를 밟기 시작했는데, 왠지 모르게 내가 형보다 더 오래 밟는 것 같았지만 모르니까 할 수 없이 한나절을 동안 서로 교대로 밟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지나간 일이니 이내 잊어버리고 말았는데, 최근 10여년전, 형을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서로 자라온 이야기를 하는 중에 그 어릴 적 생각이 문득 떠올라 “우리가 함께 빨래를 밟을 때, 형이 밟기 싫으니까 50번을 열 번해야 100이 된다고 나를 속여먹었지”했더니 형의 얼굴이 약간 빨개지며 빙그레 웃을 뿐 말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어디에 심부름 갈 때면 꼭 나는 가기 싫다는 데도 억지로 나를 끌고 가, 형은 밖에 서있고 나보고 집안에 들어가라고 하여 내가 어른들의 대신 심부름 온 자초지종의 이야기를 다하고 돌아온 적이 여러 번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리가 밝고 조리 있고 기억력이 좋았던지 어른들의 잘못된 부분까지도 지적을 하고 참견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어른들이 나의 이야기를 듣고 틀리지 않으니 나를 함부로 나무라지는 안했다. 오히려 어른들은 “우리의 의견이 이 아이의 의견만 못하네 그려!”하며 나를 오히려 칭찬하는 때도 있었다. 나는 밖에서 놀다가도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면 얼른 아버지 품에 안겨 무릎에 앉아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말씀드린다. 이때 만약 형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있었다면 그날은 형이 혼나는 날이다. 아버님의 꾸중과 매를 피해 형이 어디론가 도망가면 나는 또 아버님 등에 업혀 혹여 형이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얼마나 내 가슴은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철없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이 듬뿍 담겨 있음을 느낀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형이 살아있다. 어릴 때 추억을 고스란히 안은 채 안보면 보고 싶은 형님!
Dec 25. 2011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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