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1일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공군 방위군 시절 익힌 비행실력을 뽐내며 샌디에고 인근에 있던 항모 아브라함 링컨 호에 착륙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게 이라크 침공 미션 완수를 선언했다.
‘Mission Accomplished’라는 대문짝만한 현수막도 걸려 있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전까지 이라크에 간 장병들은 모두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높았다.
이라크 침공 후 한 달 남짓한 시간이 지난 그 때까지 전투는 사실상 끝났으며 미군 사망자는 130여명에 불과했다. 25만이 참가한 군사 작전에서 그만한 사상자가 난 것은 1991년 걸프 전 때보다는 많지만 대단한 규모는 아니었다. 이라크 전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때부터 게릴라들이 준동하고 시가전이 벌어지면서 이라크는 급속히 혼란에 빠져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차량 폭탄과 지뢰가 터지고 사담 후세인 치하에서 특권을 누리던 수니파들이 조직적인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다수인 시아파가 들고 일어나 내전 양상까지 보였다.
그 이라크에 갔던 미군들이 겨우 크리스마스 전에 돌아오기는 했다. 부시가 ‘임무 완수’를 선언한지 8년이 지난 2011년이 돼서야 말이다. 그 사이 4,400명의 미군이 죽고 3만2,000명이 부상당했다. 연방 의회 조사국 자료에 따르면 미국이 전비로 직접 지출한 돈만 2조 달러다. 또 다른 보고서에 따르면 이라크 전이 미국 경제에 입힌 부담은 3조 달러, 앞으로 부상당한 군인들을 평생 먹여 살리고 치료에 들어갈 비용까지 합치면 4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국의 연 GDP와 국채가 각각 15조 달러임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이라크 민주화 등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제2차 대전에서 이기고 돌아온 미군들은 온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장병들에 대해서는 전국이 조용하다.
돌이켜 보면 이라크 전만큼 정부의 무능을 보여준 작전도 없다. 이라크 침공의 원래 목적인 대량살상 무기는 이라크 전체를 이 잡는 듯 뒤졌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중에야 후세인이 1991년 걸프 전 후 더 이상 이를 추진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오사마 빈 라덴의 9.11 테러 계획을 까맣게 몰랐던 미 정보부는 이라크의 무기고 실정에도 철저히 무지했다.
거기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여러 명의 충고를 무시했다. 아시아인으로 처음 육군 대장인 된 에릭 신세키는 처음부터 이라크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십만의 미군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그의 의견은 하이텍 장난감으로 군 규모와 경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던 럼스펠드 국방장관에 의해 묵살됐다.
22년 동안 최장수 주미 사우디 대사를 역임한 반다르 왕자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에 들어가거든 최고위층만 제거하고 나머지는 살려둬 “나쁜 놈으로 나쁜 놈들을 잡게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부시는 이를 듣지 않고 후세인 밑에 있던 군과 정보부를 해체한 후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은 게릴라로 변해 미군을 죽이는데 앞장섰다.
정보 부재와 잘못된 판단, 비효율적인 작전으로 미군 희생이 잔뜩 커진 후 소위 ‘증파’(Surge)를 통해 겨우 질서를 잡았지만 아직도 이라크의 치안과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바로 옆에서는 중동의 강자를 꿈꾸는 이란이 호시탐탐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고 이라크 안에서는 수니파와 시아파의 해묵은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엄청난 이권이 걸린 석유 개발과 판매는 부패의 온상으로 남아 있다. 이라크 국민들이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민주 정부를 운영할 수 있을 지는 물음표 중에서도 큰 물음표다.
어쨌든 이라크의 운명은 이제 미국 손을 떠나 이라크 인들의 손에 쥐어졌다. 이들이 미국이 비싸게 치르고 넘겨준 민주 국가 건설의 기회를 올바로 활용하길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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