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악한 것 같으면서도 순진하다. 순진함이 좋을 때도 있지만 손해를 볼 때도 많다. 너무 순진함 때문에 지금도 손해 볼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승려는 바르게 살아야 하며 인과응보因果應報를 믿고 사람을 믿어야 하기 때문에 그 속에 길 들여져 누구보다 순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미국에 1985년 5월 뉴욕 원각사로 첫발을 내 디뎠다. 내가 뉴욕 원각사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 이곳에 스님들이나 신자들로부터 미 동포들이나 스님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처음 접하는 미국생활이기에 나에게는 모든 일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우선 밤과 낮이 바뀌어 몇 날 며칠을 잠만 잤고 다니는 것도 겁이나 잘 돌아다니지 못했다. 나를 데려온 무착스님은 필라 원각사로 떠나고 나는 그저 망망대해에 홀로 떠있는 기분으로 살았다. 나는 호기심은 많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마음대로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고, 절에 찾아오는 불자들을 봐도 너무 바빠 일요일 법회가 끝나기가 무섭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니 누구를 붙잡고 나를 어디 좀 데려가 달라고 말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법안 큰스님께서 내게 처음 말씀하시기를 “맨해튼은 위험한 곳이니 함부로 절대 다녀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주어 내 머리에는 그렇게 기억 되어있었다.
뉴욕에 도착한 첫날 비몽사몽간에 눈을 뜬 시각은 아침, 한국은 저녁이었다. 공양주 보살님께서 내놓는 아침 공양은 그야말로 한국의 절과는 천지차이였다. 한국에서는 기본이 밥하고, 국, 그리고 찌개와 반찬이지만 뉴욕 원각사에서는 토스트 2쪽과 쨈, 우유 한 잔, 아스파라거스 등 야채가 고작이었다. 아침 밥상이지만 밥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동안 하루 세끼 밥과 김치를 먹었기 때문에, 내 머리 속에선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식사는 밥과 김치였다. 내가 아침을 안 먹고 두리번거리면 눈치 빠른 공양주가 “법장스님! 밥 드릴까요?”하며 밥을 얼른 가져온다. 밥과 김치를 보는 순간 나는 며칠 굶은 사람 마냥 정신없이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보니 나의 머릿속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연 “쌀밥만이 식사가 아니라 빵도 식사가 되는가!”라는 의문 속에 하루는 뉴욕 거리를 지나치다가 길거리에서 일하는 덩치 큰 일꾼들의 점심 식사하는 모습이 눈에 띄어 무엇을 먹나 하고 의아해 하며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니 일꾼들은 모두 모여 둘러앉더니 점심을 빵으로 먹는 것이 아닌가! “저것을 먹고 어떻게 힘을 쓰나!”하는 의문이 썩 가시진 않았지만 인식은 되었다.
그와 같은 광경을 본 후, 나도 이제 아침으로 빵을 먹을 결심을 하고 적응하려 애썼다. 그럭저럭 몇 개월이 지나 해외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뉴욕 원각사에서 빵을 먹어본 덕분에 아주 도움이 컸다. 하루 세끼를 항상 먹어야하는 나로서는 여행 중에 가장 힘들었던 점이 아침을 찾아먹는 일이었다. 호텔에서는 보통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식당을 열기 때문에 아침을 잘 찾아먹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와 같이 세끼 밥을 찾아먹고 다니려했다면 20여 개국 여행할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Jan 2.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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