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슈의 수묵화를 보면서 - 동양화에서의 여백과 명암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서양인’하면, 큰 코와 어려운 언어 등 ‘다른’ 점이 항상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20여년을 미국에서 서양 문화와 살면서 조금씩 이 곳의 문화가 우리들과 그다지 다르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미술 작품을 대할 때도 이전에는 동양화와 서양화의 다른 점이 더 크게 다가왔는데, 이제는 같은 ‘진리’를 추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몇 주 동안 감상해 온 서양의 화가 렘브란트의 작품들에 이어, 오늘은 동양의 한 작품을 함께 감상해 보고자 합니다. 보시는 작품은 “산수화”라는 제목으로, 15세기 일본의 최고 화가 중 한 분이며, 일본의 수묵화 (Ink and wash drawing)를 완성했다고 전해지는 셋슈(Sesshu, 1420-1506)의 작품입니다. 과연 동양화와 서양화는 그렇게 다르기만 한 것인지, 그리고 동양 화가인 셋슈는 그림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명암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이 수묵화에서 주제로 보이는 중앙의 나무는 강한 명암의 대조와 힘있는 붓놀림, 그리고 리듬있는 톤의 변화로 우리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넓고 부드러운 붓터치와 중간 밝기의 전경은 뒷 배경의 높이 솟은 산과 서서히 연결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단순하고 잔잔한 톤에 의해 신비하면서도 기세있게 높이 솟아 있는 산들을 수십리 저 멀리에 머물게 합니다. 이와 같이 가까움과 먼 배경의 표현,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화폭의 중앙에서 위로, 또 좌우의 여백으로 인도하는 작가의 탁월한 솜씨는 철저히 배려된 명암의 분배와 톤에 의하여 전개되고 있습니다.
작품 속의 공간은 어떤 형체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positive space)과 비어있는 부분(negative space), 즉 여백이라는 두가지의 공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미술을 처음 대할 때는 오로지 작품 속의 형체들 (positive space) 만이 두드러지게 보이지만, 예술적인 안목이 높아가고, 작품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인 듯한 여백(positive space)이 눈에 뜨이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회화란 바로 이 두 공간의 조화로움이 창조해 내는 ‘미’이기 때문입니다.
셋슈의 ‘산수화’ 속에는 이러한 여유롭게 비워져 있는 여백과 그 가운데 깊은 무게로 자리하고 있는 자연의 조화가 있습니다. 렘브란트와 가히 비교될만한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셋슈의 필체는 동양의 자연미를 생명력있는 신비로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렘브란트에게서 셋슈를 떠 올리며, 셋슈의 작품 안에서 렘브란트가 생각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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