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창11:) 사건 이후 역사를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아브람이었다. 바벨탑 사건이란 동쪽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시날 평지에 건설 하려던 것인데, 인류 역사 초기에 대홍수 후 사람들은 시날 땅에 모이면서 도시를 건설, 탑 꼭대기가 ‘하늘이 닿게’ 탑을 세우고자 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을 떨치기 위함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혼돈케 하여 결국 바벨탑 건설은 무산되고 언어적 혼잡은 하나님의 징벌로 오늘날까지 온 세계에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브람의 아내인 사래는 갈대아 우르에서 약960km 떨어진 하란으로 다시 640km 떨어진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여 65세까지 자식을 잉태치 못하는 여인이었다. 큰 민족에 대한 약속도, 이름의 창대함의 약속도 사래가 믿은 것이 아니라 남편 아브람만이 받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00km 되는 장도에 나그네 길에 오른 것은 남편 아브람을 통한 하나님의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존 여비 사상이 무너지고 남녀평등권을 부르짖는 시대지만 신약 성경은 사래는 남편에게 순복하는 여인의 표본으로 제시 한다(벧전3:6). 성경에는 에스더나 요게벳, 한나, 룻 등이 있고, 워싱톤, 링컨, 에디슨, 어거스틴 어머니, 신사임당 김유신 등에는 여인들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큰 민족을 이룰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기근이 발생하여 사래 일행은 애굽으로 내려갔다. 거기서 애굽 왕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위기에서 구원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래는 큰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10년이 지나도 이루어지지 않자 고대 풍습대로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갖게 하여 결국 하갈을 광야에서 이스마엘을 낳아 사래에게 데려왔고, 여종과, ‘자유하는 여자’ ‘육신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의 대비는 하나님의 구속사에 의미를 보여 주었다(갈4:21-31).
아브람은 99세. 사래는 89세에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 사래는 “사라”(여왕)라는 새이름을 주심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였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잉태를 약속하였으나 사라 자신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늙음을 알고 불신하고 웃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상기 시킨다(창18:14). 오늘도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삶속에서 체험하고 있다(막9:23).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 나이 90세 때 언약의 씨 ‘이삭’을 낳게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남편 아브라함을 이해하고 순종하는 사라야 말로 믿음의 의를 드러냈고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과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로서 127세에 죽어 이스라엘 민족에 부끄러움이 없는 어머니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큰 믿음을 지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오늘의 기독교인들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생활 속에 제한시키지 않는 온전한 믿음의 삶을 살아갈 때 과거나 현재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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