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이 사역을 위한 것이 우선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부르심이라면 제 2 차적인 부르심은 ‘모든 사람들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들에’부르심 입니다(오스 기니스: 소명 p. 52). 이것은 좀더 깊은 의미의 ‘제자도’라고 오스 기니스 는 표현합니다. 이것은 제 1차적인 사명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교회 안에서 영적인 계급주의를 낳게한 구교도(캐톨릭)의 실수를 만회할수 있는 것이고 또 이 2차적인 사명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제 1차적인 사명인 하나님을 향한 부르심을 약화시킨 개신교(프로테스탄트)의 잘못과 실수를 잘 회복할수 있는 길이라고 오스 기니스는 주장합니다.
오스 기니스의 주장을 제가 간단히 정리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교인 카톨릭이 너무 잘한 것은 제 1차적인 사명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름받은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 불림을 받았기에 하나님앞에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점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어떤 사람이 은혜받고 사명 받으면 신학교에 가야 합니다. 사제나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으로 교회나 수도원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가야 하나님의 부르십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제 1차적인 부르심 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교회안에서 하는 사역이 영적인 것이 되고 세상속에서 하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안에서는 기도도 많이하고 예배도 잘 드리는데 사업하는 현장에서는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들이 예가 됩니다. 즉, 성과 속을 나누게되는 단점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개신교가 잘한 것은 구교의 잘못된 교회 안에서의 계급제도를 타파하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만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성과 속의 차이를 타파하려고 한것입니다. 사람이 교회 안에서만 예배만 드린다고 거룩한 것이 아니고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예배’(롬 12:1-2),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교회 밖에서, 삶의 현장에서 계속하여 나가는 제 2차적인 사명을 강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모든 곳에서, 모든 걸들에’부르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도 이것을 너무 강조하다 보니 캐톨릭이 아주 잘한 제 1차적인 사명에 관한 것을 약회시키기 시작하였고 오직 삶의 현장에서 잘하려고 함으로 제 1차적인 사명을 약화시켰습니다. 오늘날 일터선교를 강조하는 사람가운데 교회의 예배나 기도생활을 무시하는 것들이 예가 됩니다. 캐톨릭이나 개신교나 다 한쪽으로 치우쳐 균형을 잃어버리게 된 것을 오늘을 사는 디앙스포라가 회복하기를 주님은 원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심을 제 1차적으로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클레시아)는 먼저 ‘세상에서부터 불림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교회에서 잘 훈련받고 영성을 갖추고 교회안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는 제 2차적인 사명, 즉 ‘세상속으로 들어가 빛으로 소금으로 살라’라는 두 번째 사명을 받아 세상속에서 믿진않는 사람에게서 부터도 존경을 받는 삶의 현장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1차적인 부르심과 2차적인 부르심에 균형을 잘 맞추어 신앙생활이 교회안에서만이 아닌 생활신앙으로 교회밖으로 이어지는 삶이 오늘을 사는 디아스포라의 ‘선교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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