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과 상담하다보면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들이 있다. 열이 나는데 왜 그런가요? 배가, 혹은 머리가 아픈데 왜 그렇지요? 무슨 약을 먹어야 하나요?
그런 증상들은 어딘가에 병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지 병명 자체는 아니다. 증상들은 몸 어딘가에 숨어 있는 병을 찾아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불편하지만 우리 몸이 아직 정상적으로 반응한다는 증거도 된다.
열은 우리 몸 어딘가에 염증이 있거나 나쁜 세포가 자란다는 신호이며, 통증은 어느 장기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준다. 생명지표인 혈압이나 맥박도 숨어있는 병을 반영해준다. 예로, 혈압이 떨어지고 맥박이 빨라지면 탈수가 됐거나 어딘가에 출혈이 있다고 본다. 이렇듯 증상과 지표는 몸의 상태를 알려준다. 병의 증세를 유심히 살피면 곧 명의가 된다. 그 속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또 몸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찾아낼 수 있는 질병들이 종종 있다. 예로,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후천적으로 생기는 고혈압 중 신장으로 들어가는 동맥이 점차 좁아져 혈압이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좁아진 신장 동맥을 넓히고 튜브를 넣어주면 매우 높은 혈압이 즉각 정상으로 된다. 그런 환자인 경우 배꼽주위에 청진기를 대고 좁아진 신장동맥으로 피가 통과할 때 생기는 소용돌이 소리가 있는지 잘 들어야 한다.
우리 삶속에서도 귀 기울이고 살펴보아야할 여러가지 증상들과 현상들이 있다. 걱정, 분노 와 스트레스가 가장 흔한 것들이다. 그 외에도 교만, 허풍스런 자랑, 지나친 집착과 비교하는 마음 등등… 이런 좋지 않은 증상들과 마음은 우리를 낙담시키며 우리 자신을 실망스럽게 만든다. 이런 증상들과 현상들은 외부적인 사건 때문에 나타나기 보다는 마음 상태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자신의 미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망각할 때, 우리는 불필요한 걱정과 스트레스에 빠지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리고 “일생은 매우 짧으며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잊을 때, 우리는 남과 비교하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 그래서 내 자신이 남보다 조금 나은 것 같으면 교만하고 자랑하며, 남보다 못한 것 같으면 억울해 하며 분노한다.
양로원을 방문하러 간 어느 날 오후 차에서 내리는데, 바쁜 일상으로 무디어진 가슴속으로 차가운 바람이 휙 스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건물 옆 단풍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다.
양로원 로비에는 워커에 몸을 의지한 노인이 새장에 갇힌 새처럼 하염없이 바깥을 쳐다보고 계셨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휠체어를 타고 동그랗게 둘러 앉아 노래를 부르고 계셨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한번 바다에 도달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치열한 삶을 살아내느라 온몸이 흔적 투성이이신 어르신들이 부르는 노래였다.
동경 유학까지 다녀오신 할아버지, 시골에서 농사짓던 할머니, 그 옛적에 전문학교까지 졸업하신 할머니, 홀몸으로 여러 자식들을 잘 길러내신 할머니 …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모두 스트레스에서 초연한 모습이었다. 걱정, 교만, 분노는 간곳없고 천국을 기다리는 평안만이 감싸고 있었다.
양로원을 나오려는데 합창단 학생들이 방문 와서 어르신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고귀하다는 뜻의 ‘에델바이스’ 노래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의 노래를 듣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희로애락을 머금고 피어난 ‘에델바이스’였다.
하루라도 더 젊을 때부터 외롭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삶의 해로운 증상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양로원을 나오니 나무 밑의 잔디들이 유난히 파릇파릇하게 돋아나고 있다. 곧 봄이 올 모양이다.
김홍식
내과의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