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서 여주인공 선영 역 열연
’발레교습소’(2004)의 변영주 감독이 8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화차’는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선균, 조성하 등 뛰어난 배우들이 드라마를 엮어간다. 그러나 결정적인 펀치를 날리는 주인공은 따로 있다.
겁많은 순진한 여성에서 악마적인 살인 행각을 벌이는 선영 역을 연기한 김민희다. 상황에 따라 피부색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카멜레온처럼 그는 깊은 감정의 협곡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사악한 표정과 겁에 질린 낯빛, 티없이 맑은 얼굴을 무기로 관객을 직시하고, 때로는 외면한다. 김민희의 재발견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화차’의 개봉(8일)을 앞두고 최근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있는 한 카페에서 김민희를 만났다.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 항상 그 자리를 맴돌 뿐이겠죠. 힘든 역이라고 생각했지만 두려움은 별반 없었어요. 오히려 흥분이나 쾌감 같은 걸 느꼈죠. 어려운 걸 했을 때의 성취감 같은 거랄까요?"(웃음)
’화차’는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를 소재로 한 미야베 마유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결혼을 앞두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나선 한 남자가 그녀의 정체를 알아가면서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의 미스터리 영화다. 영화는 빚에 내몰려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절박한 여주인공의 상황을 117분간 건드린다.
사실, 김민희가 처음으로 선영 역을 낙점받은 건 아니다. 시나리오는 앞서 여러 여배우를 돌고 돌았다. 거절이 잇따랐다. 분량이 많지 않은 데다가 연기의 난도도 높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신인급 여배우들을 물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고민에 휩싸였다. 그때 즈음, 김민희가 나섰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하겠다고 했어요. 매니저와 상의도 하지 않은 상태였죠.(웃음) 선영이라는 인물이 너무나 매력적이었어요.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감독님이 절 잘 이끌고 갈 거라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글도 매우 좋았고요.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선영이 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변영주 감독은 꼼꼼한 연기지도로 정평이 나 있는 연출자다. "이렇게 해보자 저렇게 해보자"라는 주문이 빗발쳤다. 불만이 켜켜이 쌓일 법도 했다.
"제 안에 감정 중 더 적합한 것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었죠. 불만보다는 감독님에게 감사함을 느꼈어요. 감독님이 원하는 것과 제가 통하는 부분도 많았어요."(웃음)
연기하기 가장 어려운 장면을 꼽자, 펜션 신을 꼽았다. 삶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선영이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다.
"긴장해서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망막했죠. 게다가 촬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여서 캐릭터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찍게 되니 몸이 저절로 반응하더군요. 어떻게 찍었는지도 기억도 잘 안 나요. 촬영이 끝나고 나서 거의 기절했죠. 다리에도 가벼운 상처를 입었습니다. 물론 테이크는 꽤 오래갔죠. 성공적으로 촬영을 마무리하고 나서 너무 신이 나 밥을 먹었습니다."(웃음)
영화 막판 선영이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기 위해 찾아가는 용산역 장면도 김민희의 연기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무표정에서 갑자기 악마적인 미소가 솟아오르는 선영의 모습은 관객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이미 촬영 막바지여서 선영의 감정을 유지하기가 생각보다 쉬웠다. 촬영 일정상 한 테이크밖에 갈 수 없는 형편이었는데 비교적 잘 나온 것 같다"며 웃었다.
김민희는 1999년 ‘학교 2’로 데뷔했다. 벌써 13년차다. 10여 편의 영화를 찍을 정도로 연기를 꾸준히 해왔다. 천천히 일하면서 연예인임을 의식하지 않고 철저히 ‘일상인’으로 살아가는 게 ‘롱런’의 비결이란다.
"어렸을 적부터 일이 없을 때는 매니저 없이 다녔어요. 공연도 영화도 잘 보러 다니는 편이에요. 제가 뭐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좋아요. 너무 화려한 생활은 저랑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쉬엄쉬엄 일하면서 조용하게 삶을 가꾸고 싶어요. 성공보다는 천천히 제가 만족하는 대로 사는 게 더 중요해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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