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다. 금융뿐 아니라 음악, 미술, 건축, 패션, 음식, 출판 등 거의 모든 사회 문화 분야에서 선두적 위치에 서 있다. 그럼에도 이곳 주민들은 범죄에 대한 불안으로 떨며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1970~80년대 이야기다.
거리 표지판과 벽은 낙서로 도배질되고 길거리는 쓰레기로 가득 차고 불량배들은 여기저기 쏘다니며 살인 강도를 일삼아 사람들은 밤이면 문을 잠그고 집안에 들어박혀 숨을 죽이고 지내야 했다. 범죄율은 나날이 올라가고 시는 재정적으로 파산 상태고 나아질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체념과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1982년 어느 날 ‘애틀랜틱’이란 잡지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란 학자가 ‘깨진 유리창: 경찰과 동네의 안전’이란 작은 글을 올렸다. 내용은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살인과 강도 등 개별 사건을 해결하는데 힘쓰는 것보다 범죄가 용인되는 환경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 경찰은 작은 범죄 단속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불량배들은 유리창 정도는 깨도 괜찮은 줄 알고 주변 유리창을 모두 깨기 시작하며 유리창이 깨진 지역은 낙서와 쓰레기가 몰려들며 머지않아 마약과 매춘이 판치는 우범지대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는데 그 중 하나가 훗날 뉴욕 시장이 된 루디 줄리아니다. 94년 뉴욕 시장에 취임한 그는 역시 이 이론 신봉자인 윌리엄 브래튼을 경찰서장으로 앉히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돈을 안 내고 지하철을 타는 무임승차부터 낙서, 노상 방뇨 등 사소한 범죄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이 이뤄졌다.
작은 범죄 위반이 줄면서 살인 강도 등 강력 범죄 사건도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쓰레기와 낙서가 현저히 줄어들자 도시는 깨끗해지고 주민들은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강도 사건이 터져 버려졌던 센트럴 팍도 다시 주민들의 휴식처로 돌아왔고 타임스 스퀘어 등 시내 곳곳이 재개발되면서 시 전체가 활기를 되찾았다. ‘뉴욕 르네상스’란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때다.
뉴욕의 성공 사례를 본 미 대도시들은 너도 나도 ‘커뮤니티 폴리싱’이라 불리는 뉴욕 방식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그와 비슷한 성공을 거뒀다. 1992년 4.29 폭동 이후 높은 범죄율로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라는 소리를 듣던 LA는 2001년 브래튼을 아예 모셔왔고 그 후 급속한 범죄 감소를 경험했다. 브래튼 재임 시절 뉴욕 살인율은 50% 감소했고 LA 역시 50%가 줄었다. 지금 LA 범죄율은 수십년 래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범죄율 감소가 전적으로 이 방식 때문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것이 범죄 감소에 큰 영향을 줬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윌슨의 ‘깨진 유리창’ 이론의 성공 사례는 올바른 처방과 이를 실천에 옮길 의지만 있으며 해결 불가능처럼 보이는 사회 문제도 풀릴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희망을 준다. 높은 사생아 출산과 늘어나기만 하는 재정 적자 같이 미국의 장래를 위협하는 문제도 풀고자 하는 머리와 의지만 있으면 풀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깨진 유리창’ 이론가의 한 명인 제임스 윌슨이 지난 주말 80세를 일기로 보스턴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덴버에서 태어나 롱비치에서 자란 그는 레드랜즈와 시카고 대를 나와 하버드와 UCLA 등지에서 정치학을 강의했다. 뛰어난 학자이자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패트릭 모이니헌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스마트한 사람”이라고 불렀고 브래튼은 “그는 범죄뿐 아니라 무질서 예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 사법당국 사고의 전환을 이뤄냈다”고 말했다. 미국인 삶의 질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그의 명복을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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