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最古영화 문화재 등록 기념 공연..변사 조희봉 열연 돋보여
1934년 경성의 모던 보이와 걸들을 웃기고 울렸을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가 80년이란 세월을 지나 2012년 서울의 영화 팬들을 다시 만났다.
7일 오후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영화 ‘청춘의 십자로’(안종화 감독)가 지난달 문화재로 공식 등록된 것을 기념하는 변사 상영 행사가 열렸다.
변사로 배우 조희봉이 나서고 배경 음악 라이브 연주와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까지 곁들여진 공연 형식이었다.
이 공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 이 영화의 필름이 발견된 뒤 한국영상자료원이 9개의 롤 중 많이 훼손된 한 개를 빼고 나머지 부분을 복원했고 2008년 김태용 감독이 연출을 맡아 1930년대와 같은 공연 형식으로 꾸몄다. 이어 같은 해 한국영상자료원의 개관 공연으로 처음 선보인 뒤 국내 다수의 영화제와 뉴욕, 멕시코, 런던 등 해외에도 초청 공연됐다.
4년 만에 다시 선보인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는 최근 세계 영화계의 복고·향수 바람과 맞물려 관객들에게 더욱 새로운 감회를 안겼다.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920년대 무성영화 시대를 당시와 같은 방식으로 추억한 영화 ‘아티스트’가 최우수 작품상을 받고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터에 우리에게도 추억할 만한 영화의 역사와 유산이 있다는 사실은 국내 영화인들과 영화 팬들을 뿌듯하게 했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는 변사를 맡은 조희봉의 열연이 눈부셨다.
지난해 영화 ‘블라인드’ ‘페이스메이커’에 이어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최근 개봉한 ‘러브픽션’에서까지 주연 뺨치는 조연으로 활약한 그는 무성영화의 변사라는 유례 없는 역할을 맡아 70여 분간 자신의 끼와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사와 해설은 관객을 잠시도 놓아주지 않고 집중시켰고, 자칫 답답하거나 지루해질 수 있는 무성영화의 여백을 익살과 해학으로 채워넣었다.
술집 마담의 얼굴에서 허리까지 훑어가는 장면에는 "음란한 카메라 워킹", 주연 남자배우의 짙은 눈화장에는 "부담스러운 아이라인", 여배우들이 모여 대화하는 장면의 대사를 이어가면서는 "그런데 목소리가 다 똑같네"라고 눙을 치는 해설은 관객들을 끊임없이 웃게 했다.
김태용 감독이 쓴 각본과 연출도 훌륭했지만, 조희봉의 능청스런 연기가 없었다면 그 맛이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을 대목이었다.
작곡가 박천휘와 음악감독 변희석이 만든 배경음악도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특히 영화 상영과 함께 이뤄진 피아노와 아코디언, 바이올린, 콘트라베이스의 라이브 연주는 공연의 흥을 돋웠다.
1930년대의 관객들에게 영화가 마술과 같은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처럼 이날의 무성영화 변사 상영 공연은 2012년의 관객들에게도 80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환상적인 체험을 하게 했다.
이번 특별 공연은 8일 오후 3시와 7시에 두 차례 더 열린다.
◇청춘의 십자로 = 현재 남아있는 두 편의 한국 무성영화 중 한 편이며 유성시대에 만들어진 ‘검사와 여선생’과 달리 무성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영화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다.
1934년 경성 서울역에서 수하물 운반부로 일하는 영복(이원용 분)을 중심으로 젊은 남녀들의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시골에서 데릴사위로 뼈 빠지게 일하다 장인에게 배신당하고 상경한 영복, 주유소에서 가스를 넣어주는 일을 하는 가난한 ‘갸스걸’ 계순(김연실), 어머니를 여의고 오빠를 찾기 위해 상경한 영복의 여동생 영옥(신일선), 영옥을 농락하는 호색한 사채업자 개철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어설픈 액션 장면에서는 웃음이 나오지만, 자연스러운 장면 전환과 드라마의 부드러운 완급이 요즘 영화와 비교해도 크게 떨어지지 않고 은유와 상징이 돋보이는 세련된 장면들도 많다. 특히 영옥이 등장하는 첫 장면은 개량한복을 입고 요염하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번쩍이는 자동차, 주유소의 모습이나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 골프를 치는 장면 등은 당시 경성에 들어온 신식 문물의 수준과 시대상을 보여준다.
나운규를 잇는 당대 최고의 액션 배우 이원용, 아역 출신의 인기 여배우 신일선 등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대사 없이도 심리와 감정을 충실히 전달하는 연기가 돋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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