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겨울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볼셰비키들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러시아를 떠날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1945년 제2차 대전이 끝나자 소련 지배하에 있던 동구권 공산 정권이 서둘러 한 일도 역시 이민 갈 자유를 뺏은 것이다.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은 동독을 떠날 자유 박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공산주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모든 인간이 모두 공평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 이상의 ‘진보적’인 사회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가 떠날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상낙원을 탈출하려는 사람은 정신 이상자일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외국에 내보낼 것이 아니라 정신병원에 수감해야 된다는 것이 공산 집권층의 생각이었다. 실제로 소련에서는 수많은 반체제 인사와 탈출 기도자들이 정신병원에 수감돼 ‘치료’라는 이름의 고문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출국 금지는 공산 사회가 생지옥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들은 살기 좋은 곳이면 나가라고 해도 가지 않는다. 미국 경기가 좋던 시절 수백만 명의 밀입국자가 들어왔고 잡아서 추방해도 다음날이면 돌아왔다. ‘노동자 착취의 나라’ 미국으로 가난한 노동자들이 기를 쓰고 들어오고 ‘노동자 천국’ 사회주의 국가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탈출하는 모습에서 이미 동서 냉전의 승부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공산주의 원조 소련도 망해 해체되고 그 위성국 동구권도 공산주의를 버린 지 오래다. 이와 함께 외국 이주 금지령도 폐지됐다.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가 망해 외국 탈출이 가능해진 것이 아니라 동구권 주민들이 집단으로 탈출했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망한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은 동독 주민들이 이웃 나라를 통해 대거 탈출하는 바람에 베를린에만 벽을 세워두는 것이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소련도 가고 동구권도 갔지만 역대 어느 나라보다 자국민의 국외 탈출을 엄금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우리와 피를 나눈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북한이다. 이들은 김정은이 등극한 후 잡혀온 탈북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돈의 팔촌까지 잡아 죽이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시대착오적 악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탈북 행렬을 허용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가를 동구권 사태를 통해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김씨 왕조를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위해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국제 사회의 비난 여론에도 불구, 이들을 강제 송환하라는 북한의 요청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탈북자들을 그대로 놔뒀다가 대량 탈북 사태가 발생할 경우 난민 처리 문제도 중국 측으로서는 걱정꺼리기 때문이다.
중국과 북한은 그렇다 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 있다. ‘인권’을 종교처럼 떠받들고 있는 한국의 소위 ‘진보’ 집단이다. 이들은 북한의 인권 이야기만 나오면 무한히 작고 조용해진다. 이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이유는 우리가 떠들어봐야 북한 인권 향상에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장차 통일을 생각하면 북한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괜히 이런 문제로 시비 걸 것 없으며 북한은 우리와 다른 체제이므로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등등이다. 너무나 허약한 논리다.
한국 국회 대표단은 지난 주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인권이사회를 방문, 탈북자 송환 저지를 촉구하고 이 문제 처리 전담실 설치를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한국에서는 탈북자 송환저지 콘서트에 차인표, 윤복희 등 연예인이 참가하고 안철수 교수가 캠페인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하는 등 조용한 변화가 일고 있다. 이곳 LA에서도 한인들은 20일 중국 총영사관 앞에서 탈북자 북송 저지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먹을 것이 없어, 자유를 찾아 북한 땅을 떠난 이들을 다시 북한으로 보내 개죽음 당하게 할 수는 없다. 이념을 떠나 이들을 돕는데 작은 힘을 보태는 것이 모든 한인들이 해야 할 일이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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