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개운사에 있을 때, 월주 큰스님의 권유로 이십대 중반의 나이에 중고등 학생회를 맡아 지도하게 되었다. 처음 학생회를 지도하라고 했을 때, 나의 심장은 두 근 반 서근 반 고동이 쳤다. 지도자가 된다는 기쁨보다는 출가인이 아닌 속세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어떻게 불교와 접목시키느냐하는 문제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강원에서 공부한 것은 부처되는 공부이니 얼마나 깊이 공부했는가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불같은 성미를 죽여 왔고, 절대 남 앞에서 잘난 체하지도 않으려고 애써왔으며, 오직 나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 위주로 공부해 왔기에 출가자가 아닌 사회인을 향하여 내가 가르침을 행한다는 것은 왠지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아마 월주 큰스님께서 보시기에는 나에게 중고등 학생회 법회의 지도 법사를 맡기면 누구보다도 책임 있게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권했으리라 나도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몇 년 동안 개운사 살면서 나의 책임을 철저히 완수하고, 공부를 위해서 흩어짐 없이 살아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사회인을 가르친다는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배운다는 생각으로만 온몸에 도배가 되어있었기에 내가 감히 이렇게 일찍 사람들을 가르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이를 등에 없고 어찌 나른단 말인가! 내 공부가 완전히 익기 전인데 남 앞에서 무엇을 가르친다고 생각하겠는가?” 이런 생각에 휘말려 큰스님께서 여러 번 권했어도 나는 계속 거절하고 사양을 반복해왔다.
그런데 하루는 어느 날 달이 휘영청 밝은 밤, 월주 큰스님과 함께 안암동에서 보문동으로 고개를 포행삼아 걸어서 넘게 되었는데 그때 하시는 말씀 “승려라 하면 복福과 혜慧를 같이 닦아야해! 네가 너 자신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은 혜이고, 남을 위해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복이야! 사람은 복도 있어야 공부도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하시며 학생회 지도 법사를 맡아 달라고 다시 말씀하셨음으로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스님께서 나에게 자꾸 학생회 지도법사 할 것을 권하시는 것을 보면 지금이 나에게 복을 닦을 때인 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예, 제가 힘 있는 데까지 열심히 지도해 보겠습니다”한 이후로 25세의 나이에 개운사 중고등학생회 지도법사를 맡게 되었다.
이후 나는 월주 큰스님께 지도 법사를 맡는다고 약속했으니 어떻게 학생회를 지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지, 무엇부터 가르쳐야 좋은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며칠을 보내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 승려들이 하는 공부란 화두話頭 들고 삼매에 들어 하루속히 부처 되려는 공부에 집중되어있지만 학생들이란 우리하고는 전혀 다른 입장이라 내가 공부한 것을 그대로 가르친다는 것도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불교라는 것이 어떻다는 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우리 불교의 교주이신 석가모니 부처님 일생부터 가르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여 운허 큰스님께서 발행한 “불교의 깨묵”을 토대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날까지 가르침의 선상에 서있는 것은 나만의 깨침을 박차고 사람들을 향하여 20대 중반에 내디딘 첫걸음의 연장이 아니겠는가!.
Mar 27. 2012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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