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중앙교회> 강승호 목사
필라에서도 가끔 동호회를 통해서 등산을 다니는 동포들을 보면서 바쁜 이민 생활에서도 여가를 활용해서 봄의 정취를 만끽 하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등산의 묘미를 모르는 사람은 산에 무엇이 있기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고생을 하는가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등산객들에게는 대자연속에 펼쳐지는 산세며 이름모를 산천초목과 상쾌한 오솔 바람은 찌던 공해의 짓눌린 가슴을 활짝 펴게 한다. 그렇지만 등산이란 쉽게 생각하고 기분 내키는대로 욕심냈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왜냐면 오를 때 몸의 균형과 내려올 때의 몸 상태는 같을 수 없다. 정신 줄을 놓았다가는 크게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은 올라갈 때는 물론이지만 내려올 때도 겸손해야 한다.
등산을 갔던 어느 사람의 이야기로서 동료들과 산행을 나섰는데 나름대로 등산화, 등산복에다 등산모를 Tm고 등산배낭이며 지팡이까지 챙기고 처음에는 급경사도, 오르막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참을 신나게 걷다가 완만한 내리막길에서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발목을 빼고 말았다. 발목이 금세 퍼렇게 붙고 멍이 든 채 겨우 지팡이에 의지해 절뚝이며 다행히 산행을 끝마쳤지만 완쾌되기까지 몇 달을 고생 했단다.
오늘을 살아가는 동포 사회도 생존경쟁에서 벌어지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그가 다친 이유는 보조 장비도 갖추었고 몸 상태도 좋았지만 왜 다쳤는가? 사고는 그의 마음가짐이었다. 산을 우습게보고 방심했던 것이 화근이 된 것이었다. 동포 사회도 어떤 사업이나 일에 있어서 도전할 때는 자신만만하고, 신중하고 조심할 줄도 알지만 일단 목표를 달성한 이후에는 자기도취에 빠져 세상을 우습게보고 사람들을 하챦케 보기 쉽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이 성취한 것을 평생을 끌어안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올라 갈 때의 자신감과 정상을 정복했을 때의 자만심에 빠져 있으면 예측 못한 큰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조심해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다.
동포 사회도 불노 소득이나 생각하고 상도의를 망각하고 상가끼리 덤핑을 해서 지 죽고 동족 죽이는 추태는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세상의 정상에 영원히 머물 수 없고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야하고 내려오고 싶지 않아도 결국은 내려와야 하는 공수래 공수거 인생사 이기에, 돈도 명예도 지위도 권력도 모두 내려놓고 내려와야 한다.
성경에 아브라함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잘 감당해서 100세에 아들을 보았고, 노아는 120년, 야곱은 20년, 요셉은 13년, 모세는 40년, 다윗은 10년, 욥은 묘년에, 히스기야 임금도 모두 오르 내리막길을 잘 타서 역사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겼다. 동포 사회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잘 타서 후회없는 삶의 자취를 남기기를 기원 한다.
-- 여섯가지 행복이 키워드--
1. 긍정적 정서: 긍정적 감정을 가진 사람이 장수 한다.
2. 강점: 자신의 강점을 살리자.
3. 미소: 잘 웃는 사람의 생활이 만족도가 높다.
4. 대인관계: 행복한 사람은 대인 관계가 폭 넓다.
5. 유전: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절반은 유전 된다.
6. 감사: 감사를 표현하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4월 18일자
강승호 칼럼
언약의 후계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간 자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에게 주는 의미
<순복음중앙교회> 강승호 목사
이번에는 이삭의 일대기에서 하나님의 섭리속에 이루어 지는 깊은 뜻을 상고 하고자 한다. 이삭의 이름 뜻은 웃음이다. 그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언약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기 25년 전부터 불임의 부모에게서 하나님의 언약 속에서 출생 했다. 그의 출생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결실이었다. 그는 바다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은 약속의 자손의 첫 열매가 되었고 첫 계약의 상속자가 되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요, 어머니 사라는 90세 때 출생했다. 100세의 얻은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축복의 선물이었고, 아브라함에게는 생명보다 더 귀한 독자였으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여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고 아브라함은 순종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고 단 위에 놓아 제물로 죽이고자 ?다. 그 때에 이삭은 반항도 않고, 그저 침묵으로 순종한 것이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때 이삭이 적어도 25세는 되었을 것이라 했고, 또 다른 학자들은 33세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삭은 충분히 결박을 풀고 반항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나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하는 순종이 필요하다. 신앙생활에서 때로는 불도 준비되었고 나무도 준비 되었지만, 번제할 어린 양이 없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생각된다. 교회가 조직도 있고 일할 계획도 있으나 그러나 누가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이 되느냐가 문제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시고 번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신앙은 이론이 아니다. 계획도 더구나 아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희생이 뒤따라야 한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자(롬12:10). 이삭이 40세 때 리브가를 만나 결혼하여 60세에 야곱과 에서를 낳았으니 20년 세월동안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의 첩의 소생인 이스마엘은 벌써 12형제를 두었고 12방백을 이뤘지만,(창25:16) 그런 상황에서 그의 인내와 간구는 실로 20여년의 간구한 오랜 기도였다. 오늘의 신앙의 사람들도 조급한 마음보다 인내가 필요함을 잊지 말자.
이삭이 20년의 간구 끝에 태중에 두 민족이 나누이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기한이 차 에서와 야곱을 낳게 되고 장성하였을 때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겨 동생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았고 이로 인하여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지 못하는 한 많은 비극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 두 형제의 비극은 부모의 편애가 빚은 가정불화의 한 단면인 것이다.
이삭이 남긴 신앙의 발자취에서 창26장에 보면 일곱 번에 걸쳐 우물을 팠다고 한 것은 원수들의 시기와 싸움을 피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우물을 넘겨주고 새로운 샘물을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했고, 결국 적들은 무릎을 끓고 사죄를 했을 때 오히려 이삭은 그들을 맞아 잔치까지 베풀었다(창26:30).
이삭은 족장들 중 어떤 사람보다 짧고 단순하여 폄범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순종의 태도와 묵상의 신앙과 화목의 삶은 구속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리스도의 예표하는 “씨”로서 믿음의 삶을 살았던 사람임을 택함받은 성도들은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는 육적으로는 부정모혈로 태어났기에 부모님께 효도하고 영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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