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경기도에는 광견병 주의보가 발효 중이다. 30년 만에 처음 한강이남 지역에서 광견병에 걸린 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렇다. 정부 당국의 지속적인 산림 보호 정책으로 요즘 한국은 어딜 가나 수목이 울창하다. 나무들이 이렇게 잘 자라다 보니 산짐승들도 크게 늘어났다. 동물들이 차에 치이지 말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고속도로 위에는 동물 전용 다리까지 설치 돼 있다.
야생 동물들이 이런 보호를 받으며 불어나다 보니 문제도 생긴다. 먹을 것이 부족한 동물들이 인가로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목격자에 따르면 경기도 화성의 광견병 발생 사례도 배고픈 너구리가 마을로부터 내려오면서 비롯됐다. 광견병에 걸린 이 너구리는 개 밥그릇을 발견하고 몰래 먹기 시작했지만 곧 이 집에 살고 있던 풍산개에게 발견됐고 싸움이 붙었다.
이 개는 밥그릇을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너구리에 물리면서 광견병에 걸려 한 달 뒤 1년 남짓한 짧은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죽기 전 발작을 일으켜 주인을 물어버렸고 이 주인이 병원에 가 치료를 받던 중 광견병에 감염된 것이 확인됐다. 다행히 이 주인은 곧 완쾌될 것이라 한다.
광견병은 잘못 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그러나 이런 무서운 병이 서울 인근에서 발생했음에도 거의 보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간 6명이 이 병으로 목숨을 잃었으며 2004년 이후에는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이 병보다 더 걸린 사람이 없는데도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드는 병이 있다. 광우병이다.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광우병으로 죽은 한국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봄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다는 뉴스가 나오자 수도 서울 전체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규탄하는 촛불로 뒤덮였다.
“한국인은 광우병에 잘 걸리는 유전자를 가졌다” “재미 한인들도 미국산 쇠고기는 먹지 않는다” 등등의 허무맹랑한 유언비어가 인터넷을 휩쓸고 여중생들이 떼로 몰려나와 “일찍 죽기 싫어요”라며 울부짖었다. 소위 진보/시민/인권 단체들은 철없는 소녀들의 행동에 갈채를 보내며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며 검역주권의 수호자”라고 박수를 쳐댔고 MBC 등 일부 언론은 왜곡 보도로 이를 더욱더 선동했다.
그 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려 죽은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이제는 철이 들 때도 됐으련만 이들의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가주에서 돌연변이로 인한 광우병 젖소 한 마리가 발견되자 다시 한 번 4년 전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기를 쓰고 있다.
과거 광우병 발생 소들은 사료에 고기를 섞어 먹인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이제는 이것이 금지돼 사실상 이 방식으로 광우병이 발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와는 달리 유전자 돌연변이로 광우병이 생기는 수는 있지만 그 사례는 극히 미미하다. 90년대 광우병이 일반에 널리 알려진 이래 미국 내에서 쇠고기로 인한 광우병 발생 사례는 3건밖에 없었는데 3건 모두 외국산 쇠고기를 먹고 일어났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죽은 광우병 환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처럼 걸려 죽기 힘든 병이 한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것은 의학적으로 위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유용하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해 낙담해 있던 야권/운동권/시민 단체에게 광우병은 활기를 되찾게 해준 고마운 선물이다.
이들이 광우병보다 수만 배 많은 한국인을 죽이는 암과 심장병의 직접 원인인 술 담배 판매 금지를 위해 촛불 기도회를 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수많은 한국인이 즐기는 술 담배에 반대하기 힘들다면 광견병의 매개체인 너구리부터 잡자는 촛불 기도회를 여는 것은 어떨까. 광우병보다는 광견병으로 죽은 한국인이 훨씬 많기에 하는 이야기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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