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때문에 생긴 일
나는 은사스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만 나름대로 불평도 많았다. 나에게는 마음에 한번 해야 하겠다는 결정이 되면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성격이 있다. 법주사 강원에서 해인사 강원으로 옮길 때 은사스님께 말씀드렸더니 “네가 지금 다른 절에 간다면, 모든 것이 서툴러 망신을 당하는 날엔 은사인 나도 망신이니 내 곁에 와서 석 달만 더 있다가라”하셨는데 나는 서둘러 해인사로 갈 요량으로 그 말씀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이튿날, 싸늘한 새벽 범종소리를 들으며 대중들이 예불 드리는 시간을 틈타 수계 도반인 법철스님과 함께 걸망을 메고 법주사에서 해인사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겼다.
공부하는데 불이 붙어 은사스님의 말림에도 불고하고 떠났던 것이다. 그 당시 해인사는 대중을 많이 수용했지만 물질적인 면이 풍부하지가않아 강원에 공부하러오는 모든 학인 들이 각자 스스로 이부자리를 싸들고 가야하는 때였다. 나도 이불 하나를 김천 구화사에서 어렵사리 얻어갔는데 강원 졸업하는 동안 참으로 요긴하게 잘 썼다. 김천 구화사 노스님이나 보살님으로부터 강원 공부하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다. 헤어진 지 오래되어 전혀 소식은 모르지만 진심으로 두 분께 감사를 드린다.
우리 은사스님께서는 상좌들이 공부하는 것을 장려하고 좋아하시는데 단 재정적인 면이 아주 빈약하셨다. 승려는 본래 가난한 것이 미덕이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으니 그것이 문제였다. 강원시절 몸이 아파 병원을 가기 위해 말씀드리면, 사찰 살림을 경영하는 원주스님에게 보내고, 원주스님한테 가면, “법장스님은 은사스님이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 은사스님에게 병원 비를 타가시요!”하는 바람에 나로서는 참으로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대안이 서지 않는 문제였다.
아무튼 해인사로 강원을 옮겨 공부하는데 우리 은사스님께서는 내가 배울 책은 고사하고, 노트 한 권 옷가지 하나 챙겨주지 않으셨다. 그러니 어린 나에겐 자연히 불평불만이 싹트지 않았겠는가! 나는 스님들이 모여 앉는 자리만 있으면 은사스님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았더니 어느 순간 은사스님 귀에도 들어갔다. 은사스님은 그것이 매우 불편하셨던 것 같다. 가진 것 없이 사는 것이 승려의 본분이지만 사람을 키운다는 문제에 있어선 도와주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속상하셨을 것은 사실이다. 이런 관계가 악화되어 은사와 상좌간 예의는 지켜 인사는 하되 말 한마디 없이 2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해인사로 갔지만 은사스님께서는 “어른의 말씀을 안 듣고 해인사로 갔다”는 것이 큰 이유였다. 인사드리면 “너! 도망간 놈이지?” 이 한마디 외에는 아무 말 없이 찬바람만이 돌았다.
그러나 강원을 마치고 서로 화해하였다. 스님께서“네가 공부하는 동안 못 도와준 것은 나도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그렇다고 네가 어른에게 그럴 수 있느냐? 이제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수포로 돌리고 없었던 일로 하자! 앞으로는 내 말을 잘 듣겠느냐?” 하시기에 나는 정중히 스님께 참회하며 “스님! 지난 저의 잘못 용서하십시오. 앞으로 스님 말씀 잘 따르겠습니다.”하여 서로 다짐을 주고받은 이후 열반하실 때까지 스님 말씀을 어긴 일이 없다.
대한불교 조계종 미주 필라 황매산 화엄사
주지 주훤 법장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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