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라 폴렛은 대다수 한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그러나 그는 미 역사상 몇 안 되는 뛰어난 정치인이다. 연방 상원은 그를 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상원의원 5명 중 하나로 꼽았고 1982년 역사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그는 ‘미국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상원의원’ 랭킹 1위에 올랐다.
그는 1901년부터 1925년까지 위스콘신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을 역임하며 기업의 횡포를 막고 노동자, 여성, 아동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 옹호를 위해 싸웠다. 로버트 라 폴렛 주니어와 필립 라 폴렛 등 그의 아들들은 아버지 뒤를 이어 22년 간 연방 상원의원과 3선 주지사를 각각 지내며 위스콘신을 미국 진보의 아성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미국 사회당 본부가 위스콘신 밀워키에 있고 이곳에서 미국 대도시로는 처음 사회주의자 시장이 나왔다. 그 후 두 번이나 더 사회주의자가 시장에 당선됐으며 사회주의자 언론인이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미국에서 처음 직장 상해 보험이 시작된 곳도 여기고 여성과 아동의 노동 시간을 제한한 곳도 여기다.
그 위스콘신이 지금 부글부글 끓고 있다. 공무원 노조의 단체 교섭권을 박탈한 스캇 워커 주지사 소환 선거가 5일 열리기 때문이다. 2010년 당선된 워커는 공무원들의 과도한 연금 혜택을 바로 잡지 않으면 만성적인 주 재정 적자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단체 교섭권 박탈이 불가피하다는 판단 아래 그런 내용의 법안을 마련해 통과시켰다.
노동자들의 노조 강제 가입을 막기 위해 지금까지 의무제이던 노조 회비 납부도 자율로 바꿨고 공무원들로 하여금 의료 보험료의 12.6%와 봉급의 5.8%를 연기금용으로 부담시켰다. 이런 조치들은 위스콘신뿐 아니라 50개 주 정부를 쥐락펴락 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전국 공무원 노조를 분노케 했다.
전국 공무원 노조는 워커 주지사를 그냥 둘 수 없다며 소환 캠페인을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고 수천만 달러의 외부 지원금을 쏟아 부었다. 만약 다른 주지사들도 워커를 본받아 이런 개혁을 따라 한다면 공무원 노조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워커 개혁 이후 공무원 노조 가입자 수는 6만2,000에서 2만8,000으로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고 주 정부는 10억 달러의 세금을 절감했다.
자기를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돈과 표를 몰아주고 매년 더 많은 납세자의 혈세를 연금과 의료 보험이란 형태로 빨아가는 공무원 노조의 행태는 전국적인 현상이며 거의 모든 주가 이로 인해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도로가 엉망이 되고 공공 교육기관이 문을 닫고 대학 수업료는 나날이 올라가는데도 이들은 자기 밥통 이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사기업 노조의 횡포에는 한계가 있다. 회사가 망하게 됐는데도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해 회사가 정말 문을 닫으면 이들도 일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을 닫을 수 없는 주 정부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용기 있는 정치인과 이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뿐이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뉴 딜’을 시행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마저 공무원의 단체 교섭권은 인정하지 않았고 지미 카터도 연방 공무원의 단체교섭권을 제한했다.
워커 소환 선거는 미국 민주주의 체제가 과연 급속도로 늘어나는 재정 적자를 스스로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망해야 정신을 차리는지를 시험하는 중대한 사건이다. 미국판 진보와 노조의 본고장 위스콘신에서 이 개혁이 시작됐다는 것은 지극히 적절하고 온당하다.
투표 전날인 4일 현재 워커 지지자는 반대자를 50%대 48%로 근소한 차지만 앞서 가고 있다. 만약 이 싸움에서 그가 이긴다면 그는 라 폴렛 이후 위스콘신은 물론 미국 역사를 바꾼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위스콘신과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