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난데일의 한 2층 건물. 녹음(綠陰)의 걸걸하던 기세마저 꺾인 7월의 염천 대낮에 경쾌한 경드름 음이 연신 새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널찍한 마루 공간에 10대 오누이가 앉아 스승의 북 장단에 맞춰 창(唱)의 삼매경에 빠져 있다. 스승의 호통에 고개를 숙였다가도 다시 소리로 들어가면 앳된 표정에는 비장함과 익살이 교체하며 어엿한 소리꾼으로 변해간다. 재담과 골계(滑稽), 아릿한 정한으로 가득한 그 우화적 서사의 진의도 채 모를 나이에 이 오누이는 왜 광대의 소리에 빠져든 걸까.
훼어팩스 김민지양-태규군
변화무쌍한 운율에 푹~
학교서는 판소리 전도사
“초등학교 5학년 때 누나가 판소리 하는 걸 보고 시작했어요. 사실 판소리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제 꿈인 가수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 누나를 따라 다니며 배웠어요.”
동생 김태규 군(15. 로빈슨중 8학년)에 판소리는 어차피 가창(歌唱)의 길로 접어드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누나인 민지(17, 로빈슨 고 11년) 양은 일찌감치 변화무쌍한 판소리의 운율에 매료됐다 한다. “한국에 살 때 한국무용을 하고 합창단을 했어요. 국악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노래 부르는 게 재미있고 시원시원하게 소리 내지르는 게 좋아요. 5년 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오자말자 워싱턴 소리청의 김은수 선생님을 만나 시작했어요.”
이 오누이는 학기 중에는 주 2회 스승을 찾아 나선다. 방학인 요즘은 매일 12시간을 소리공부에 매진한다. 아침에 훼어팩스의 집을 나서 ‘워싱턴 소리청’을 찾으면 귀가 시간이 밤 10시를 넘기기 예사다. 발성과 감정, 시김새, 선법… 배울게 너무 많아 집에서도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스승과 공부를 하며 녹음한 걸 틀어놓고 따라 하고 또 한다.
한참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지만 아니리와 발림이 조화를 이루는 소리의 길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스마트폰만큼이나 흥미롭다.
“물론 친구들과도 가끔 놀아요. 공연할 때는 학교 친구들도 초청하는데 목소리가 희한하고 낯설지만 느낌이 좋다고 해요. 처음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조차 무서웠어요. 이제는 무대에 서는 게 재미있어요. 중요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공연하면 Certificate도 받아 좋아요.”
태규 군 못지않게 누나인 민지 양도 학교에서 판소리 전도사다.
“제가 반쯤은 장난으로 장단을 가르쳐주면 얘들이 신기하다고 난리가 나요.”
오누이는 목소리가 트이고 소리의 경륜이 보다 깊어지면서 무대에 설 기회도 많아졌다. 지난 6월 뉴욕에서 열린 제12회 세계한국국악경연대회에서 태규 군은 중등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민지 양은 대학 및 일반부 최우수상을 받았다.
태규 군은 “소리공부 열심히 해 상 받는 즐거움도 고마운데 수상 경력이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된다니 더 기뻐다”며 “앞으로 목소리가 더 깊어지고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털어놓는다.
해외 판소리계에서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는 민지 양은 꿈이 야무지고 어른스럽다. “물론 좋은 대학 가는 게 중요하고요. 나아가 우리 소리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국악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우리의 소리에 심취하는 그날을 위해 제가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습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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