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에서 주관하는 여행을 몇번 간적이 있다. 우선은 신경 안쓰고 먹고 자는 게 해결돼 일정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았다. 그런데 호텔은 좋은 곳에 드는데 워낙 빠듯한 일정으로 뛰다보니 방에 들어가 씻고 자기 바빴다.
한번은 늦은 밤에 도착해 일어나라는 전화벨 소리에 튕겨나오듯 일어나 밥 한술 먹고 짐들고 버스로 뛰는데 바로 옆에 너무도 예쁜 해변이 보였다. 바다라면 환장하는 내가 발 한번 담궈보지도 못하고 그냥 떠나는게 너무 서러워 분한 맘까지 들었다.
그렇게 버스에 태워주면 조느라 바깥구경 한번 못하고 어딘가 도착하면 우루루 내려서 가이드가 서라는 곳에 서서 번갈아 사진 한장 박고 다시 우리에 몰아넣는 닭처럼 버스에 집어넣고..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집에 오면 내가 갔다 온 데가 어디였는지 나도 헷갈리게 된다. 아마 세트장처럼 만들어 놓고 버스에 태워 시뮬레이숀으로 드라이브 한 것처럼 효과를 낸후 사진 찍고 호텔에 넣어 재우고 왔다 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한꺼번에 다 볼 욕심을 접고 한군데씩 갈수 있는만큼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몇년 전, 빠리 여행도 즐거웠고 이번 바르셀로나와 빠리 행도 즐거웠다. 따로 다니는 여행은 미리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 숙소를 정해야 한다.
지난번 빠리에서는 민박집에 묵으려 했다가 도저히 있을만하지 못해 호텔 찾아다니느라 무지 애를 먹었다. 또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미리 공부해 놓으면 여행의 의미가 훨씬 진해진다. 모든 것은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즐기게 되는 것, 여행길에서 마찬가지다.
이번은 지난번 빠리에 갔을 때 일정이 부족해 시간을 못썼던 뤽상부르그 공원을 보기로 했다. 뤽상부르그 공원에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개미’를 쓴 베르베르 때문이었다. 그의 단편중에 뤽상부르그 공원이 배경이 된 소설이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날 괴상한 물건이 하룻밤사이에 뤽상부르그 공원에 놓였다. 냄새도 괴상하고 무겁고 도저히 움직여지지도 않아서 할수없이 시멘트를 부었는데 그래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아 유리로도 뒤덮어보고 이런저런 다른 재료를 써 덮었다. 드디어 성공된 날, 우주의 어느 행성, 한 보석상에서 주인이 고객에게 전화를 한다. 주문하신 보석이 이제 다 준비 됐습니다, 라고.
기발한 상상에 웃음짓던 나는 언제 빠리에 가게 되면 그 우주인의 똥덩이가 공원 어드메쯤 놓여있었을까 가늠해보고 싶어 꼭 가보려 했다. 뤽상부르그 공원은 한때는 왕의 궁전이었다는데 그저 평범한 공원같았다. 그런데 그 평범한 풍경을 예사로우면서도 문화적이게 하는 건 사람들이었다. 커다란 연못가에 수백개, 수천개의 의자가 놓여있고 모두들 나와 책을 읽던지 친구들과 담소를 하던지 비스듬히 누워 해바라기를 하던지 하고 있었다.
문화는 사람이 만드는 거다. 평범한 지형도 사람이 평범치 않게 만들면 특별한 곳이 된다. 뤽상부르그 공원은 그곳 주민들의 쉼터요 사교장이요 숨결이었던 거다. 그 수많은 의자들, 잡상인 하나 없이 바로 옆의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으면서 서로 함께 있음을 즐기는 문화. 부러웠다.
나도 돌아가면 친구들 불러 싸이프러스호텔 앞의 분수옆에서 만나 비스듬히 누은 채 잡담하자고 하고 싶었다. 빠리 사람들의 쌀쌀함과 무례함은 싫지만 그들이 한조각의 풀밭에서도, 한 자락의 햇살에서도 인생을 즐기는 태도는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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