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반상을 구별해 놓고 당대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누구의 자식이라는 말로 개인의 인격을 평가했다. 집안 내력이나 부모자식의 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미성년자이면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하지만 성인이 되면 한 독립된 인격체다.
성장기에 내 이름 뒤에 붙었던 ‘목사 딸’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차별 같지 않은 차별을 당한 적이 많았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 멍에를 져야 할지 모른다. 그런데 요즘 한국 정가에서 유치하게 ‘누구의 자녀’라며 오래 전 고인이 된 부모를 볼모로 물고 늘어지는 것을 보니 한심해서 새삼 옛 일들이 생각난다.
형사처벌을 받았거나 의혹을 받고 있는 전 대통령의 자녀도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 그리 자랑스럽지도 않은 전 대통령들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이 대선을 앞두고 특정 후보를 부모와 연관시켜 그 책임을 물으니 비겁하고 야비하다. 북한처럼 세습을 했거나, 성인으로 부모의 어떤 일에 본인이 가담했을 때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내가 결혼했을 당시 남편이 상공부에 근무하며 경제개발 5개년 정책(국토개발사업과 가발, 보세품 등 수출사업)에 관여해서 밤낮 일했기 때문에 우리들의 신혼생활은 없었다. 그때 야당은 경제개발 사업에 도움은커녕 사사건건 방해했고 심지어 그들은(전직 대통령 포함)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라며 경부고속도로 공사장에 누워 공사를 방해했었다.
최근 영문으로 책을 낸 K씨는 새마을 운동의 일환인 토지개발사업을 처음 맡았던 분인데 당시 농민들이 논바닥에 누워 “죽여라”며 토지개발을 반대했지만 개발 후 더 넓어진 땅과 편리하게 변한 마을을 보고 용서를 빌더라는 얘기와 도미 후 미국회사에서 사우디 건설현장 감독으로 파견됐을 때 필리핀 노무자들이 “한국은 모 대통령 때문에 부흥하고 필리핀은 마르코스 때문에 망한다”던 말이 만고에 진리가 됐다고 했다.
그는 작금의 한국 정가를 보며 대통령이 진짜 독재를 해서 이북처럼 쫄쫄 굶게 했어야 한다며 흥분하고 있다. 그의 소년기에 멀쩡했던 식구 셋이 굶어 죽었고 그 또한 굶어 죽을 뻔했기 때문에 그는 보릿고개를 넘겨준 분을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작은 희생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부모 탓을 하며 특정인에게 불이익을 줘야 하는가.
우리 아버지는 내가 다닌 대구 모 고등학교(장로교 소속) 재단 이사였는데 장로교 교단 분쟁 때 자신의 이익이나 명예보다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해 우리 학교 반대 교단에 섰다. 그 후 나는 학교 당국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 그 상처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나는 부모를 볼모로 한 인격체에 상처를 입히는 것보다 더 치사하고 야비한 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제발 이제 고인을 선거에 이용하는 치사한 일은 그만했으면 한다.
이성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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