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자주외교의 상징,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이 우리 품으로 들어오게 됐다. 1910년 일제에 강제매각 당한지 102년만의 경사다.
백악관 북동쪽의 로건 서클에 위치한 이 건물은 1891년 조선 정부가 사들인 후 14년 간 주미 공사관으로 사용된 유서 깊은 공간이다.
해방 후 67년. 마침내 문화재청과 문화유산국민신탁이 350만 달러에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때늦은 감은 있지만 그 역사적 가치를 되찾으려는 한국정부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수훈갑들도 한국 언론에 얼굴을 내밀었다. 정부 부처, 민간 문화단체, 기업이 힘을 합쳐 팀플레이로 이뤄낸 성과라는 자화자찬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워싱턴 동포들은 없었다.
사실 이 공사관 건물의 역사적 가치를 주목하고 처음으로 매입운동을 전개한 건 워싱턴 한인들이었다. 매입의사를 처음 밝힌 건 1990년대 말 미주한인회총연합회였다. 실제 매입운동이 전개된 건 2002년 이민 1백주년 워싱턴기념사업회의 캠페인이었다. 범 동포사회 모금운동이 전개되고 그때 모은 기금이 이자를 더해 8만3천여달러가 은행에 보관돼 있다.
미주총연과 이민100주년기념사업회는 재매입추진위를 결성해 공동 매입운동에 나섰으나 추진위의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다 4개월 만에 갈라섰다. 서울의 민간단체도 끼어들었다. ‘구한말 워싱턴공사관 찾기 운동 본부(본부장 유상열 한국기독교총연합 평신도위원장)’가 조직되면서 3개 단체에서 경쟁적으로 건물주를 접촉하는 등 독자 매입에 나섰다. 건물주는 가격 150만 달러 외에 추가 조건을 내걸었다. 3파전이 될수록 집값은 점점 높아졌다. 결국 2005년 동포들에 의한 자체 매입운동은 잠정 중단되고 정부가 나서게 된 것이다.
부끄러운 자화상이긴 하나 공사관 매입에는 우리 동포들의 땀도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워싱턴 동포들이 ‘1인 10불, 벽돌 1개 쌓기’ 캠페인을 벌인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공사관 건물 매입의 ‘공’은 고스란히 한국 측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워싱턴에선 지금 ‘우리의 공이 더 컸다’는 식의 동포단체 간의 해묵은 갈등이 재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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