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박근혜는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가 된 바로 다음 날 첫 일정으로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등 이른바 국민대통합을 위한 행보를 숨 가쁘게 이어왔다.
박근혜의 노 전 대통령 묘역 방문 계획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그의 맹목적인 부산지역 지지자들이 대거 봉하마을로 몰려 와 심지어 그가 헌화와 묵념을 하는 와중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연호해 망자를 능멸하는가 하면, 그의 방문을 못마땅해 하는 마을 주민들과 거친 언쟁을 벌이고 멱살잡이를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박근혜의 어줍잖은 화합 행보가 역설적으로 국민적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근혜는 망국적인 ‘증오의 정치’를 끝낼 적임자는 아닌 것 같다.
마침 박근혜의 방문에 때맞춰 묘역 인근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다.” 구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딸인 스배틀리나 스탈리나가 남긴 말이다. 언뜻 우리에게 함축하는 바가 큰 이 플래카드는 박근혜를 지지하는 마니아들에 의해 곧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왜들 이러는 걸까.
박근혜에게 노무현은 혐오스런 ‘참 나쁜 대통령’이자 ‘경제를 망친 몹쓸 대통령’이었다. 2004년 8월 나경원 등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이 공연한 ‘환생경제’란 연극에서 의원들이 “노무현 육실할놈, 개잡놈, 거시기 값도 못하는 놈, 임기 후 죽이겠다” (새누리당이 맹비난하는 민주통합당 김용민과 이종걸의 막말은 이들에 비하면 애교에 가깝다. 만일 노무현에게 했던 막말을 박정희에게 했다면 십중팔구 모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는 등의 막말 대사를 쏟아내자 박장대소하며 고인을 한껏 조롱했던 바로 그 박근혜가 국민대통합이란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시침 뚝 떼고 엊그제 ‘참 나쁜 대통령’ 묘역을 찾은 것이다.
유족 측과는 사전 조율은커녕 방문 일정을 언론에 밝힌 후 당일에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절차적 결례를 범했을 뿐더러 고인에 대한 덕담 한마디 없이 서둘러 묘역을 떠났다. 이렇듯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독단적인 행태로는 대통합은커녕 소통합도 이루기 어렵다. 진정성 없는 행보는 차라리 안 함만 못하다.
박근혜가 대통합 행보의 진정성을 증거 하려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어두운 정치적 유산 중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사안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리가 있어야 한다. 첫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다. 장물인 정수장학회는 마땅히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
둘째,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인혁당 사건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깊이 사죄하고 셋째, 최근 다시 불거진 장준하 선생 의문사 의혹에 대해서도 “과거에 이미 조사가 끝난 일”이라며 딴청 부리지 말고 철저한 진상규명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이 세 가지 부정적인 유산을 명징하게 정리하지 못한다면 박근혜의 대통합 행보는 ‘대선용 대국민사기극’일 뿐이다.
<김중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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