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이 히트를 친적이 있다. 홍 상화라고, 무슨 반공법 위반으로 하루 아침에 빠리에 내버려진 사람이 됐다.
내 나라의 독재 정권이 빚어낸 슬픈 사연인데다 프랑스에 대한 사람들의 동경심이 합쳐져 그 책은 거의 유행 수준까지 인기였다.
감수성 깊은 젊음이 처해있는 상황이 그래서였을까, 시니컬하면서도 섬세하게 풀어낸 프랑스에서의 사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그 책에서 그는 프랑스 사람들의 똘로랑스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한국 사회가 원낙 획일적인데라 정치성향은 물론, 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획일적인 것에 대한 날 선 비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게 같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싫었던 나는 공감이 됐고 또 그림의 종주국처럼 대접 받는 프랑스를 남다르게 동경했던 터라 그의 책을 읽으면서 똘로랑스가 있어 각자의 인격과 개성이 존중되는 나라의 이미지로 내 그리움을 더욱 키웠었다.
스페인에서 기차로 프랑스 국경을 넘자 예쁜 프랑스의 시골이 나타났다. 기차는 쾌적했고 창을 통해 비껴드는 햇살은 투명하니 반짝였다.
빠리에 도착하고 너무 피곤해 호텔에서 누었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왔는데 밥 생각은 커녕 그저 빨리 눕고픈 맘 밖에 없다. 숟가락 놓자마자 웨이터한테 간절한 눈길로 계산서를 재촉 했다.
두어번 재촉을 받고서야 가까이 온 웨이터는 커다란 제스츄어로‘일본사람, 중국사람, 한국사람들은 그저 빨리빨리 밖에 몰라요. 좀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사세요.’하며 마치 우리를 꾹 눌러 앉히듯 두 손으로 꾹꾹 누르는 시늉을 한다. 당황해서 그의 눈을 보니 정말 화난 눈빛이다. 어쩔줄 모르고 돈을 치르고 도망치듯 나왔다.
다음 날, 셍제르멩의 쇼핑가를 걷다가 낯익은 화장품 가게를 봤다. 그 상호때문에 생각나는 이가 있어 비행기에서 사면 더 싸련만 그리운 마음때문에 들어섰다. 점원 하나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보이는 젊은 남자 하나가 있었다.
한가할 때 들어 온 손님이면 반가워 할 것 같은데 돌리는 눈길이 얼음장 같다. 립스틱 몇개를 손등에 발라보고 티슈로 지운 후 쓰레기통을 찾아 더듬거리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점원의 눈길이 왜 그리 조마조마했을까.
전철역을 찾아 하염없이 걷다 상호가 낯익은 빵집을 발견했다. 비상양식으로 바게트 하나 사두려고 들어갔다.
가늘고 기다란 빵을 손바닥만한 봉투에 넣어주는데 나는 반을 뚝 부러뜨려 넉넉한 봉지에 담아 핸드백에 넣고 싶었다. 점원이 다음 손님하고 오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기다리다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아 그녀 곁에 쌓아놓은 봉지를 하나 집으며 양해를 구하는 눈빛을 보내는데 그녀가 내게로 획 돌아서더니 자기에게 묻지않고 직접 집었다고 파르라니 떨며 앙칼지게 쏘아본다.
어찌나 무섭던지 마치 인정사정 없이 야단치는 선생 앞에 선 어린애처럼 어쩔줄을 몰랐다. 문득 프랑스로 입양된 우리나라 애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애들은 어떻게들 살고 있나, 모두 이렇게 부들부들 떨리는 맘으로 눈치보며 살면 어쩌나, 가슴이 싸늘해 진다.
자기나라를 찾아온 손님에 대한 기본적 똘로랑스도 없으면서 홍 상화가 부러워하던 사회적 똘로랑스는 어디에 있는걸까.
마지막, 출국 수속을 하는데 작고 바짝 마른 프랑스남자가 우리의 행적을 웃음기 하나없는 살벌한 표정으로 범죄자 수사하듯 꼬치꼬치 묻는다. 떠나는 그 순간까지 무서웠던 프랑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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