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같이 가자!“
‘오, 나의 태양,’ ‘당신은 나의 햇빛,’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따위의 사랑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듯하다. 뭇 청춘남녀의 입에 붙은 말이어서 심드렁하다. 이런 상투적인 사랑의 고백을 초라하게 만든, 가슴 뜨거워지는 독백을 엊그제 들었다. “우리 같이 가자!”라는 말이었다. 여관에 가자는 제비족의 유혹이 아니었다. 달콤하지 않고 목멘 소리였다.
말한 사람이 청년도 아니었다. 서울 문래동의 78세 노인 이모씨였다. 그는 지난달 부인 조모(74)씨의 목을 조르면서 “사랑하니까 이러는 거야. 나도 뒤따라 갈거야”라고 울부짖었다. 머잖아 금혼식을 맞을 금실 좋았던 이씨 부부의 결혼생활이 뜻밖에 파탄으로 끝났고, 자살미수로 부인을 뒤따라가지 못한 이씨는 살인범이 돼 감옥에서 여생을 보낼 처지다.
비극의 원인은 몹쓸 병 치매였다. 명문대 출신이며 건설회사 임원으로 은퇴한 이씨는 치매를 앓는 아내를 2년간 지극정성으로 돌봐왔다. 늘 곁을 지키며 밥을 먹여주고 목욕도, 산책도 시켜줬다. 하지만 부인의 증세는 최근 크게 악화됐다. 사건당일에도 할머니는 이씨를 옷걸이 등으로 때리며 “부모 없이 자란 XX”이라는 등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고 했다.
엉겁결에 부인을 교살한 이씨는 곧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너희 어머니를 죽였다”고 말했다. 아들이 집에 달려왔을 때 이씨는 정장차림으로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 한쪽 다리를 올려놓고 뛰어내릴 참이었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내가 죽었어야하는데…”라는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아내를 돌보는 일이 너무 힘들어 견딜 수 없었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이씨 사건 닷새 후인 지난달 24일 전북 곡성에서도 역시 78세 노인이 치매 부인과 동반 음독자살을 시도했다가 중태에 빠졌다. ‘사랑하기 때문에 죽이는’ 역설적인 살인사건은 지난해 이후 언론에 보도된 것만 20건에 육박한다. 한 전문가는 “치매는 10년 이상 앓는 장기 질병이므로 가족이 겪는 스트레스는 제3자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미주 한인사회에도 치매를 앓는 부모나 배우자 때문에 엉망이 된 가정이 많다. 시애틀 지역에선 한인 치매노인이 가출 후 실종신고 돼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증 치매환자는 양로요양시설에 수용되므로 가족이 겪는 고통은 한국보다 덜하다. 연방정부는 지난 5월 치매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2025년까지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공표했다.
한국정부도 4년전 제1차 국가 치매관리 종합계획에 이어 지난 7월 제2차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국가차원의 건강검진을 내실화해 치매증세를 조기 발견하고, 중앙 치매센터와 권역별, 지역별 치매센터를 세워 치매의 진료 및 관리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현재 14만 9,000여명인 장기요양 보험 수혜대상자도 3년 내 2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란다.
평균수명 100세의 초고령화 시대가 열리면서 치매환자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현재 53만4,000여명인 한국의 치매노인은 2025년엔 두 배인 100만여 명에 달하게 된다. 한국 치매환자의 약 60%는 가족이 보살핀다. 사회시설이 확충되면 가족들의 고통은 크게 줄어들지만 사리판단과 인지능력을 잃은 환자들에겐 그게 그거다.
그래서 치매도 예방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뇌세포를 자극하는 게임을 많이 할 것 ▲많이 웃고 많이 걸을 것 ▲친구를 자주 만나고 건전한 사교모임에 자주 참여할 것 ▲늘 새로운 정보를 접할 것 ▲유행에 민감할 것 ▲긍정적 사고, 적극적 생활방식을 취할 것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 ▲식사는 자기 양의 80% 정도만 먹을 것 등을 권한다.
대통령 선거로 요즘 한국도, 미국도 시끌벅적하다. 대선 때마다 늘 그랬듯이 이번 후보들도 선심성 복지정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국민복지 서비스일 수 있는 치매노인 지원 대책에 관해선 유구무언이다. 후보들도 치매 증세인가? 마침 뉴욕 등 미국 동부지역이 때 아닌 ‘괴물태풍’으로 초토화됐다. 자연현상마저도 치매에 걸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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