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스튜디오 때 한 여자가 내 방에 들어서는데 팔뚝 위에 어린 왕자의 문신이 그려있다. 이 세상에서 어린 왕자를 좋아하지 않는 이가 어디 하나 있으랴마는 나는 그의 광팬이어서 아마도 할로윈 의상을 입고 지구를 깜짝 방문한 예수가 혹 그 어린 왕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터라 너무도 반가워 덤썩 붙들고 말을 시작했다.
문신은 절대로 안하고 싶은 것중의 하나였는데 그녀의 팔뚝에 그려있는 어린 왕자의 의젓한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하고 싶기까지 했다. 어린 왕자가 소개 시켜준 터라 마치 일생을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한참을 죽이 맞아 수다 떨었다. 그러다 어디 나라 사람이냐니까 프랑스 사람이란다.
내가 프랑스의 문학과 예술을 너무도 사랑하던 사람이었는데 지난 번 휴가를 갔다가 하도 사람들 행실이 밥맛 없어서 정 떼고 왔노라 했더니 그녀는 마치 자신이 잘못을 한것 마냥 어쩔줄 모르며 미안해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미국에서 꽤 오래 살았는데 실상 친절해 보이는 미국인들이 속으론 냉냉하며 겉으론 불친절해 보이는 프랑스 사람들이 알고보면 정말 진실하고 따뜻하다고, 다시 한번 프랑스엘 가게되면 자기가 알선 해주겠단다.
인간들이 이유없이 서로 좋아하다 싫어하고 혹은 이유없이 싫어하다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황당한 선입견에 바탕에 둔 것임을 종종 깨닫는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당장 안 읽을 책이라도 옆에 두고 있다가 내키는 순간이 오면 집어들기를 잘하는데 최근에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드디어 수십년만에 집어들고 읽다가 아차, 싶었다.
우선 무소유라고 하는 그 엄정한 논제의 제목에 미리 긴장해 꼬장꼬장한 설법을 늘어논 책일 것이라는 선입관에 그 오랜 세월동안 손이 가지 않았었다. 그런데 깔깔대고 웃기다가 숙연케 하는 강 길웅신부님의 수필보다는 덜 재미있지만 다감하며 감수성 깊은 진솔한 수필이었다. 선입관 때문에 좋은 글을 오랜 세월 묵혀둔 것이다. 더구나 스님이 다른 어느 스님에 대해 쓴 글을 읽고는 너무 웃으워 한참을 웃었다. 좀 길지만 다시 옮겨본다.
그때까지 나는 선사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기없는 고목처럼 꼬장꼬장한 수도승, 인간적인 탄력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일에 당해서는 전혀 타협을 모르는 고집불통이었으리라고. 그런데 암자 한구석에 세워 둔 거문고와 그 위에 걸린 퉁소를 보고 그의 인간적인 여백과 마주쳤던 것이다...
내가 법정스님에게 갖고 있던 편견을 어쩜 그렇게 똑같이 표현했을까. 그것도 그 스님이 다른 스님에게 갖고 있던 편견이었다니. 예전에 유행했던 ,타타타’라는 유행가의 가사가 생각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찌 알랴.한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많은 편린중의 단 한조각을 보고 함부로 사람을 평가할 일이 아니다. 아니 설령 어느 한 사람에 대해 오늘 이 순간만큼은 속속들이 알고 있다 손 처도 우리는 늘 성장하고 변하는 존재가 아닌가?
어제 흐르던 물이 어제의 그 물이 아닌것 처럼 어느 누구도 변치 않는 모습으로 무궁 세월을 살지는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라 화석이나 미이라 라고 밖엔 볼 수 없을 것이다. 법정스님이 일갈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무슨 말씀. 그건 말짱 오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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