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에서 지혜란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이라 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열심히 얻어내려고 했던 게 지식이었다면, 이미 도달한 한계 지점을 의식하며 자발적으로 겸손해지는 상황은 지혜를 얻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것도 때가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그때는 나이가 들어가는 때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여러 군데서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 한계의 첫 불청객은 아무래도 신체적 변화다. 갑자기 눈이 어두워지며 글이 잘 안 보이기 시작한다. 머리카락도 희끗해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손에 잡힐 정도로 빠져나간다. 헉헉대지 않고 올라가던 언덕이 이젠 오르기 힘든 가파른 산처럼 느껴진다. 수동적으로 한계가 감지되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신체만 그러한가.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부대끼던 아이들이 갑자기 떠나버린다. 복잡하던 집안이 순식간에 적막해진다. 전엔 안 그랬는데 이젠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며 괜한 우울감에 빠지곤 한다. 앞만 보며 달려온 지금까지의 내 인생사는 업적이 아닌 허무함의 상징처럼 보인다. 이 역시 인생의 수동적인 한계가 드러내는 또 다른 얼굴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급습해오는 한계들을 어떻게 해석해내느냐가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될 것이다. 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서다.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고 우기기 시작하면 그러는 내 자신은 우울증의 블랙홀로 더 빨려만 들어간다. 그러다가 급기야, 인생의 가장 소중한 선물인 지혜를 낚아채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이번 추수감사절에 집 떠나 학교 간 아들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먹는 게 부실해선지 몸무게가 더 빠져있었다. 짠한 마음에 물었다. “뭐가 제일 먹고 싶든?” 먹고 싶다는 그것을 해주거나 사주고 싶은 부모 마음에서였다.
거기에 돌아온 아들의 답, 명답이었다. “남이 해주는 밥!” 기숙사 생활이 아닌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터라 아들은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 먹고 싶었단다. 아, 그렇구나, 남이 해주는 밥, 그게 제일 먹고 싶었겠지. 어쩌면 그에겐 당연한 답이었을 것이다.
아들의 이 말을 들은 난 그 지점에서 또 하나의 지혜를 터득했다. 그 지혜란 내게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는 아내와 함께함이 가져다주는 축복이었다. 사실 지혜라는 게 아주 가까운 데 있는 건데 인간은 그것을 오히려 먼 데서 얻어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니 오늘 난 가장 가까이서 지혜 하나를 얻어낸 셈이다. 내게 밥해줄 수 있는 아내와 ‘함께 있음’에 대한 고마움이다.
아내는 이번 한국 방문 중 온 친족들이 모이는 자리에 갈 기회를 가졌다. 최씨 일가가 다 모이는 자리였다. 아내는 거기서 형님을 저 세상에 먼저 보내신 친정아버지의 입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다음엔 내 차례겠구나.” 장인어른은 이제 그 문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분이 되신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아버님 차례인 것은 맞다. 미국 살기에 그런 친정부모를 자주 뵙지 못하는 아내로서는 이 말이 굉장히 슬프게 들렸으리라.
연말이 시작되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함께 있음’의 고마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 고마움의 상대가 갑작스럽게 곁을 떠나버린 쓸쓸한 이 시대의 지혜자들이 있다. 혼자되신 분들이다. 나이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분들은 내가 다니는 교회에, 내가 사는 커뮤니티에 꽤 있다. 이 연말에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방법으로든 함께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들, 인생의 어느 시점에, 집에 왔는데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는 때를 경험했을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학교 다녀왔는데 집에 아무도 없었다. 있어야 할 엄마도 외출 중이셨다.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이유는 잘 기억 안 난다. 그냥 울었다. 세상에, 내가 말이지, 학교까지 갔다 와줬는데, 아무도 나의 출입을 안 반겨주다니! 아마 이래서 마냥 서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일을 매일 겪어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남이 해주는 밥.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한때 좀 불편하고 아웅다웅거리며 살았어도, 나와 따뜻한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내 집에, 내가 다니는 교회에 여전히 함께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 연말은 그들과의 함께함이 가져다주는 축복에 푹 파묻혔으면 한다. 이제 할 일이 하나 생겼다. 내가 해준 밥 나눌 수 있는 분이 누군지 찾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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