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닥터(The Doctor)’라는 영화를 아들과 함께 다시 보았다. 꽤 오래 전에 나온 영화인데, 여기서 주인공 닥터 맥키는 아주 잘 나가는 흉부외과 의사이다. 그는 자신만만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매사를 신속히 처리하는 유능한 의사이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의사는 아니었다.
그러한 그가 기침할 때 피가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결국 후두암 선고를 받게 된다. 의사이면서 환자가 된 그는 꼼짝없이 병원의 모든 진찰과정과 의료진의 태도를 경험해야 했다. 지나치게 복잡한 절차와 불친절, 필요 이상으로 사무적인 의료진들에게서 그는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또 여러 시술을 거치며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을 점차 알아간다.
처음에 추천받은 방사선 치료는 실패로 돌아갔다. 고민하던 그는 같은 병원에 있는 다른 이비인후과 의사를 찾아간다. 그 의사는 맥키가 평소에 무시하던 동료였다. 그러나 절박해진 맥키는 그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게 되고 그의 따뜻함에 감동을 받는다.
후두암 수술 직후 그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오랜 절망스러운 시간들이 지나고 기적같이 음성을 회복한 그는 새로운 의사로 태어난다. 환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병원을 찾아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닥터 맥키는 수련의들에게 지식의 전달 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산 경험을 훈련시키기로 작정하고 수련의들에게 환자복을 입힌다. 그들은 환자가 되어서 병원 음식을 먹으며 환자들이 겪는 모든 시술 과정을 실제로 경험하게 된다. 어리둥절해 하는 수련의들이 환자의 심정을 온전히 알 수는 없겠지만, 그들은 훌륭한 의사들이 될 것이다.
영화를 보며 의사가 환자의 심정으로 하나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다시 한번 느꼈다.
하나 됨은 장기이식에서도 중요하다. 신장의 경우 기능이 10% 정도로 떨어지면 투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협받는다. 요즘은 투석 기술이 많이 발전되어 집에서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한 치료는 신장이식이다.
근래 미국에서는 연간 약 1만7,000 건의 신장이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식이 필요한 환자에 비해 장기 기증은 턱없이 모자라 신장이식을 위하여 기다려야 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언젠가 인체 배아 줄기세포에서 장기를 대량생산하여 이식하는 날이 올지 모르겠다.
이식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혈액형이 우선 맞고 조직형이 상당히 맞아야한다. 조직형이 잘 맞고 신장을 기증자에게서 떼어내어 환자의 몸에 잘 붙였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몸에는 본인의 것과 다른 모든 것은 몸 밖으로 밀어내려는 면역기능이 있기에, 신장이식을 한 사람은 면역억제제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는 거부반응을 일으켜 이식된 신장을 파괴한다. 한편 면역억제제는 몸의 면역을 떨어뜨려 바이러스 감염이나 악성종양 발생 위험을 높인다.
이런 일들을 보면 우리 개개인의 몸이 얼마나 독특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것이 하나로 동화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심을 감사하는 절기이다. 콩팥도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의사도 환자의 심정을 헤아려 주기 어려운데 하나님은 인간과 하나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는데, 왜 인간과 인간은 막혔던 담을 헐고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
진료가 끝난 어느 오후 병원 대기실에 앉아 환자의 심정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바라보았다. 빨강, 초록, 금빛과 은빛의 장식들이 나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반짝이는 장식과 함께“하나 되고, 함께 하여 주고, 베풀고, 용서하라”는 사랑의 캐롤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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