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드디어 취임했다. 기왕이면 취임식이 1주일 앞당겨져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두 대통령을 기리는 ‘Presidents Day’와 같은 날이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미국을 일으킨 조지 워싱턴이나 노예를 해방하고 ‘남북통일’을 이룬 아브라함 링컨처럼 위인 대통령이 돼 한국에도 ‘대통령의 날’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미국인들은 워싱턴과 링컨 두 대통령 중 누가 더 위대하냐를 놓고 곧잘 논쟁을 벌인다. 역사학자들의 평가나 여론조사에선 십중팔구 링컨이 앞선다. ‘역대 대통령 등급’이라는 책(1997년)에선 워싱턴이 프랭클린 루즈벨트에도 밀려 3위로 쳐졌다.
링컨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롤 모델이었다.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다. 소년시절 찢어지게 가난했고, 가방끈이 짧고(노무현은 고졸, 링컨은 초등학교 중퇴), 막노동 일을 했고,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고, 각급 선거에서 줄줄이 낙방했고, 급기야 두 나라에서 똑같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노무현은 끝내 링컨 같은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다.
정직하고 올곧은 성품, 관용의 리더십,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에 천부적 유머감각까지 갖춘 링컨은 노무현과 박근혜를 비롯한 세계 모든 대통령의 롤 모델로 손색이 없다. 그는 노예해방과 함께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양분된 나라를 합중국 체제로 재통합한 ‘제2의 국부’로 추앙받는다. 오바마 대통령도 첫 대선 캠페인 때 ‘링컨 닮은 대통령’을 표방했었다.
알고 보면 박근혜와 링컨도 닮은 데가 있다. 링컨은 최초로 암살당한 미국 대통령이고, 박근혜는 최초로 암살당한 한국 대통령의 딸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에 앞서 어머니도 암살범의 흉탄에 잃어 두 동생의 보호자가 됐고, 링컨은 10살 때 어머니, 20살 때 누이, 42살 때 둘째 아들, 53살 때 셋째 아들을 잃었다. 양가 가족사가 모두 비극으로 점철됐다.
남북대결의 시대 상황도 닮았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노예해방의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했고, 그를 위해 제13차 헌법수정에 올인했다. 히트 영화 ‘링컨’(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바로 그 과정을 감명 깊게 묘사하고 있다. 조국분단이 반세기를 넘었지만 박근혜는 취임도 하기 전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해 어느 선대보다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점이 더 많다. 우선 박근혜에게선 링컨의 태생적 서민 체취를 맡을 수 없다. 링컨의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 어머니는 미혼모의 딸이었고 둘 다 문맹이었다. 초등학교를 9개월 만에 중퇴했다. 책 한권을 빌리려고 20마일을 걸었다.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공사판을 전전했다. 대통령이 된 뒤 백악관 현관에서 자기 구두를 닦아 신었다.
박근혜는 권위주의 분위기의 청와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학교도 경호원과 함께 갔고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둬야했다. 어머니 별세 후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며 고관대작들을 상대했다. ‘근엄한 근혜’의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졌다. 미혼이므로 가정살림의 희로애락과는 거리가 멀다. 주부들의 장바구니 애환을 모르는 여자라는 비아냥도 듣는다.
박근혜는 정직성도 불투명하다. 가게 점원이었던 링컨은 고객에게 거스름돈 몇 센트를 적게 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한밤중에 찾아가 돌려줬다. 박근혜는 돈이 많다. 부모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정수 장학회’가 아킬레스건이다. 10여 년간 이사장으로 20여 억원을 챙긴 그 장학재단은 사실상 아버지가 민간인에게서 강탈한 것이라는 통설을 한사코 부인한다.
박근혜가 링컨에게서 배울 게 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집념이다. 링컨은 남군의 최후발악을 차단하고 야당을 설득하는 정치력을 발휘해 노예해방을 못 박은 제13차 수정헌법을 단 2표차로 통과시켰다.
박근혜는 북한의 핵실험이 최후 발악이며 ‘정권 붕괴의 전조’라고 둘러말했다. 박근혜의 현재 위기는 조국통일을 이루는 ‘성군’이 될 기회일 수 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