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골의 가난한 부모아래 태어난 여아가 있었다. 그녀는 엄격하고 갑갑한 가정과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를 설득하여 도시로 나가 학교에 다니게 된다. 하지만, 그 당시 여자는 학교를 다닐 수 없었기에 남자로 변장하고 등록을 했다.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 그를 짝사랑하게 되지만 자신이 여자인 것을 밝힐 수 없는 처지에 놓인다.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온 그녀는 또 다른 곤경에 처한다. 그녀의 부모가 동네 부자 집 아들과 혼인하도록 주선한 것이다. 학교에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지만 부모를 거역할 수 없었다.
한편, 학교의 남친은 자신의 친구가 여자인 것을 알아내고 그녀를 찾아가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미 다른 남자와 정혼한 사실을 알고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는다. 결혼식 날, 여자는 웨딩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속에 입고 있었던 상복 차림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무덤을 파고 들어가 그의 영혼과 하나가 되어 하늘로 날아간다.
이것은 올해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앙리가 9세 때 본 영화 ‘영원한 사랑’의 이야기다. 그로인해 앙리는 학창시절 내내 영화에 빠졌다. 앙리는 항상 조용하고, 수줍어하며, 친구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가문과 권위를 고집하는 고등학교 교장인 아버지의 주문, “엔지니어가 되라”에 숨통이 막혀 탈출구를 찾은 곳이 영화관이었다.
타이완에서 대학입시에 2번씩이나 실패한 앙리에게 남은 것은 삼수를 해서 대학입시를 다시 치르든지, 군대에 가든지, 아니면 직업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광대 짓은 하지마라”는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앙리는 타이페이에 있는 예술학교에 진학해 연극 수업을 받았다.
그 후, 유학길에 올라 UIUC(일리노이주립대)에서 연극 공부를 계속했다. “박사학위를 따서 타이완에 돌아와 교수를 하면 좋겠다”라는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도 뿌리쳤다. 동료 학생들이 한 시간에 읽어내는 각본을 앙리는 10시간 이상 걸렸고, 읽는다 하더라도 절반도 이해 못하는 고통을 겪으며 학부를 마쳤다.
그래도 영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앙리는 영화전공을 하기 위해 NYU 대학원으로 진학했고, 졸업 후 영화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 후 6년 동안 100여 편의 각본을 써서 이곳저곳에 보냈지만 모조리 거절당했다. 영화 제작사에 찾아가 자신의 각본을 소개할 때도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바보 취급을 당하기 일쑤였다. “영화 제작사들이 나의 초본은 좋아했지만, 5번, 6번 다시 써오라는 통에 기가 죽었다. 당시 우리 가족이 최고급 외식을 한 곳은 켄터키 후라이 치킨집이었다”라고 앙리는 회고했다.
그 6년의 최악은 앙리가 36세가 되던 해,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은행 통장에 23달러가 전 재산으로 남았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리의 아내는 영화에 미쳐있는 남편에게 다른 일자리를 알라보라고 눈치를 준적이 없었다. 그녀는 남편이 무엇이 된다는, 즉 직업이나 직장 타이틀에 희망을 걸지 않고 앙리라는 인간 자체를 믿었다.
앙리가 감독한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등장하는 소년에게서 우리는 앙리와 그의 아내를 만날 수 있다. 바다에 표류된 뗏목 위에 올라탄 호랑이를 만난 소년처럼, 앙리 부부는 그들의 삶 속에서 체면세우기에 급급한 부모,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자, 반복되는 실패라는 호랑이를 만나 절망적이고 참담한 현실에 부딪혔다. 그렇지만, “호랑이와 한 배를 탄 것이 오히려 조난을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라는 소년처럼 앙리 부부는 호랑이와 공존하는 비법을 터득했다.곤경은 그것을 극복해 가는 과정에서 지혜를 선사한다. 앙리의 오스카 상 수상은 그와 비슷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해 온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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