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이 모르고 지나쳤지만 워싱턴주 제2도시인 스포켄이 침공군에게 한때 점령됐었다. 낙하산을 타고 벼락같이 기습한 적군은 놀랍게도 한국말을 했다. 북한 인민군이었다. 마침 휴가 나왔던 해병이 동네 10대들을 이끌고 침공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쳤다. 해병은 적군 괴수를 사살해 그에게 죽임당한 경찰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후 장렬하게 전사했다.
웬 잠꼬대냐고 할지 모르지만 실은 영화 얘기다. 작년 11월말 개봉돼 일찌감치 종영된 액션영화 ‘붉은 새벽’(Red Dawn, 댄 브래들리 감독)이다. 한인배우는 최 케네스 등 2명만 조연급으로 출연했고 인민군 엑스트라는 대부분 중국인과 베트남인들로 채워졌다. 엉터리라는 혹독한 비평으로 관객동원에도 실패해 제작비(6,500만 달러)를 겨우 절반 남짓 건졌다.
인민군이 등장한 첫 헐리웃 영화로 아카데미 특수효과상을 받은 ‘(원한의) 도곡리 다리’와 비교가 안 된다. 휴전 직후인 1954년 개봉된 이 영화는 당대 톱스타 윌리엄 홀든과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했다. 북한군 전략 요충지의 다리 5개를 폭파하고 귀대하던 미 해군 폭격기 조종사 홀든은 기체에 포격을 맞고 낙하산으로 탈출한 후 단신으로 교전하다가 전사한다.
원래 ‘Red Dawn’은 1984년 히트한 동명 영화(존 밀리우스 감독, 찰리 신 주연)의 개조작품이다. 원작에서는 쿠바 군인들이 콜로라도의 시골동네를 기습 점령했었다. 톰 크루즈의 양아들 코너 크루즈도 출연한 개작영화의 침공군은 원래 중공군으로 돼있었지만 헐리웃 영화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르는 중국 관객들의 눈치 때문에 제작 도중에 북한군으로 바뀌었다.
중국이 지구촌 경제패권의 라이벌인 미국 도시를 침공했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북한 인민군은 좀 생뚱맞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깡패 국가’로 낙인찍어 만만하기 때문일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북한은 지구촌의 마지막 오리지널 공산국가다. 냉전시대가 오래 전에 종식됐지만 아직도 미국인들의 머릿속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이 깃들어 있다.
워싱턴주에서 공산당원은 투표도 못하고 공직취임도 못한다. 지난해 조지아에서는 카운티의회 의원으로 임명된 사람이 반공선서를 해야 했다. 펜실베이니아와 캘리포니아도 국가전복 단체(공산당) 회원들은 주 공무원으로 임용하지 않는다. 코네티컷, 버지니아, 일리노이도 비슷하다. 이 같은 차별행위가 헌법 위반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반세기 전 판시가 무색하다.
하지만 한국의 종북 좌파 정치인들보다 반공의식이 투철한 미국인들의 심기가 요즘 좀 불편하다. 한때 미국 프로농구(NBA)를 주름잡았던 데니스 로드먼이 “미국을 지구상에서 없애버리겠다”고 망발하는 북한을 느닷없이 방문해서 김정은을 만났기 때문이다. 로드먼은 자선 서커스 농구단인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단원 3명 등과 함께 지난달 26일 평양에 도착했다.
로드먼은 이틀 뒤 예상을 뒤엎고 김정은과 나란히 앉아 담소하며 글로브트로터스 단원이 한명씩 낀 두 북한 농구팀의 경기를 관전했고, 경기가 110-110 동점으로 끝난 뒤 경기장을 메운 수천명의 관중을 향해 연설하면서 김정은에게 “나는 당신의 평생 친구”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로드먼의 방북 행적은 추후 HBO의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포함돼 방영된다.
로드먼은 90년대 후반 시카고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핀스 등과 전성기를 누렸다. 득점보다 리바운드가 특기였다. 고의적 파울을 일삼아 코트의 악동으로 불렸다. 지저분한 문신에 머리를 온갖 색깔로 물들였고 귀와 코에 쇠고리를 꿰어 ‘벌레’라는 별명이 영락없이 어울렸다. 김정은과 그의 선대 김정일이 조던이 아닌 ‘벌레’의 광팬이었단다.
로드먼의 방북이 대 중국 ‘핑퐁외교’에 버금할 대 북한 ‘농구외교’라며 김칫국을 마시는 사람이 있다. 최악상태인 북-미관계가 풀리고 김정은이 핵개발 작태를 중단하면 로드먼도 ‘벌레’에서 ‘나비’로 화려하게 변신한다. 그러나 지난 1995년 무하마드 알리의 방북도, 지난달 에릭 슈미츠 구글 회장의 방북도 북한의 체제 선전에만 기여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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