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을 말로만 듣던 ‘엄친아’로 키우고 있는 친구한테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큰 아들이 수학 경시대회에서 1등을 했다고, 보지는 않았지만 입이 귀에 걸린 안부 반 자랑 반인 전화였다.
전화 통화 이후 ‘이만하면 됐다’며 ‘우리 애들은 잘 하고 있다’고 내심 안심하고 있던 내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져서 수학경시대회 일정을 알아보고, 머리 속으로는 이제 초등학생인 딸이 벌써 대학 원서를 쓰고 있었다. 아이비리그에 입학한 학생들 스펙을 훑어보면서 우리 딸 앞으로 나만의 스펙을 짜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편으로 딸의 미래 계획을 짜면서 다른 한편으론 시작도 안한 딸의 미래를 ‘이미 늦었다’ 열패감으로 갈무리하는 나 자신이었다. 엄마로써 발빠르게 우리 딸의 앞날을 위해 미리미리 계획하고 스펙을 쌓아 줄 미션들을 하나씩 완성해 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이제 5학년인 딸을 앞에두고 나의 머리 속은 그렇게 헝크러져 갔다.
생각해 보니 인생 반 넘어 살아오면서 나의 삶의 여정이 부모님이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대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니었다. 물론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피심이 무엇보다 나를 키웠지만, 학교 때 만난 선생님들, 친구들, 읽었던 책들, 영화들, 그리고 신앙도 나를 키워왔다. 삶의 구비구비에서 만난 사람들, 그 가운데 섞여서 돌아가던 모든 인생의 ‘생로병사’, 봄 밤에 만났던 담벼락의 라일락, 밤새 나누던 친구와의 대화, 서늘하게 땀을 식혀 주던 바람 한 줄기도 미리 계획했던 건 아니었지만 오늘날의 나를 키우고 만들어줬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아이를 위해 좋은 걸 주고 싶어서 애쓰는 마음은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의 마음이다.
사교육 열풍도 그런 부모 마음의 한 자락일 것이다. 그러나 친구의 전화 한통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내 마음의 저 바닥에는 아마도 부모만이, 엄마인 나만이, 아이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오만함이 있었다. 내가 짜준 프레임 속에 아이를 가두지 말고, 미래를 열어놓는 대신 따뜻한 조력자로서 아이 곁에 머물러 주는 게 진짜 내 일 같았다. 지나가는 바람마저도 아이를 가르칠 수 있게 자리를 비워 두는 일이 엄마의 일이라고 아직도 흔들리는 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는다.
=============
결혼 14년차 전업주부. 막 사춘기에 돌입한 큰 딸과 까칠하고 나름 도도한 둘째 딸, 그리고 자기가 슈퍼맨인 줄 아는 막내 아들, 이렇게 세 아이의 엄마이며 크리스찬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