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년이 넘도록 친구가 될려고 접근을 해도 될 수 없었던 동갑내기 친구가 있습니다. 어떤 일로 한번 그 집에 들렸지만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습니다. 보통 친구를 잘 사귀는 편인데 이 사람은 잘 만날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취미도 달라서인지 그냥 지나치면서 인사나 나눌 정도였습니다.
2012년이 거의 다 지나간 쌀쌀하고 어둑어둑해지는 어느날 이 친구집에 초대받아 갔습니다.
모두들 안방으로 가서 이불을 덥고 앉기 시작해서 나도 따라갔더니 마룻바닥이 따스해지면서 발부터 올라오는 온기가 내 몸을 녹혀 주기 시작했습니다. 아, 옛날 내가 자라왔던 시골의 온돌방 그리고 화롯불을 가운데 놓고 할머니가 고구마, 감자 밤을 구워주었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물론 우리는 구워먹을 것도 없고 화롯불도 없었지만 그날부터 나는 더 구수한 삶의 맛을 구워먹는 시간들을 보내게 됐습니다.
누가 오든지 언제나 이 집에는 먹을 것이 풍부하고, 말거리도 풍부해 완전히 주인 만큼 풍부하고 넉넉한 분위기로 바꾸어지는 곳이지요. 생전 말을 하지 않던 한 자매님이 귀가 멍할 정도로 얼마나 말을 잘 하는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서글프고 우울했던 엄마도 그 집에만 오면 같이 웃고 평화로운 위로의 시간을 보내지요. 점잖해 보였던 언니들도 우수갯소리를 하면서 모두를 웃깁니다.
이 자리에 앉기만 하면 보통 남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 또한 말문이 저절로 열리게 하는 편안한 안방이며, 늘 아랫목에서 새근새근 잠들 수 있게 하며,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르던 사람도 친해지며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친구같이 느낍니다. 밤이 늦어지면 모두가 일어나기 싫어하다가 그만 잠까지 자고 가는 친구들도 더러 있습니다. 집에 갈 시간이 야속해지기도 합니다.
첫날 이렇게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나는 이친구에게 선물을 해 주고 싶은 것이 생각났습니다. ‘평옥의 사랑방’ 문패, 집 입구에다 걸어놓으면 제격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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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versity of Kansas 약대 졸업. 2003년 새크라멘토 한인암환우 모임 ‘샬롬회’ 창립. Marshall Medical Center 암 치료 센터 근무하며 24년간 암전문 약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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