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엄마에게 선물했던 제일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고 가는 속옷 가게에 걸린 아줌마용 파자마였다. 분홍색이었고, 몇 날 며칠을 봐두었다가 돈을 모아서 어버이날 선물로 샀었다. 선물을 받은 엄마의 얼굴이 기억이 난다. 웃으셨고 난 매우 쑥스러워했다. 왠지 엄마에게 선물할 만큼 커버린 내가 대견하고, 어느새 커버린 내가 들킨 거 같기도 한 마음에서였다.
며칠 전 그때의 나만큼 커버린 우리 큰 딸이 얼굴에 영양크림을 바르고 있던 나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엄마 그 화장품 좋아?”라고 물었다. “좋지,”라고 무심코 대답했는데 우리 딸이 “마더스 데이 선물로 사줄까?”라고 물었다. 우리 엄마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딸이 어느새 이만큼 자랐구나!’라는 마음, 그 마음은 좋기도 하고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다. 이제는 ‘내 품 안의 자식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초음파 사진으로 우리 딸을 처음 만나던 날, 첫 태동을 느꼈던 날, 태어나서 내 품에 처음 안겼던 날, 그리고 처음 걸었던 날……. 우리 딸은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이름을 붙여줄 수 있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그 ‘처음’이라서 뭐든지 서툰 엄마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가장 많이 들게 한 게 큰딸이었다. 큰딸이 아기에서 소녀로 자라날 때 나 역시 ‘여자’에서 ‘엄마’로 변화되었다. 그 세월은 나와 우리 아이들이 같이 만들어간 시간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러 우리 딸이 나만큼 나이가 들어 자기 아이에게 첫 선물을 받을 때 기억했으면 좋겠다. 너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모든 순간이 엄마에겐 선물이었다는 걸 말이다. ‘존재’가 선물이고 축복이라는 걸 널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도. 인터넷 쇼핑으로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와 시어머님께 선물을 보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딸이 내 곁으로 오는 축복도 없었을 테니까. 축복의 통로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분들께 우리가 직접 은혜를 갚진 못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은혜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리사랑이라고도 한다. 우리는 모두 무한한 시간의 경륜에 한점처럼 존재하지만, 우리가 받은 것, 우리가 줄 수 있는 것들은 결코 작지 않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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