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지금은 대학교에 간 딸아이와 둘이서 유럽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행 경비 마련을 위해서 우린 상자 하나를 만들고 그곳에 모든 잔돈과 푼푼이 생기는 지폐를 모았다. 그리고 웬만한 과외나 외식 등도 삼가했다. 딸아이는 우리가 방문할 5개국에 관한 기본 정보를 찾아보는 등 얼마나 계획이 거창했는지 모른다. 나의 계획은 아이가 이 여행을 통해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배우길 원했다.
하지만 런던을 거치면서 딸과 내가 깨달은 것은 유럽여행의 흥분이 아닌 우리 둘이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사춘기에 막 접어든 말 잘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딸과, 배려심 없는 엄마 둘이서 하는 여행은 가관이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앞에서는 카메라 충전상태 문제로 얼마나 싸웠는지,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잡은 딸 아이의 작은 손을 통해 난 참 큰 것을 멀리도 가서 깨달았다.
우리 딸이 아직 어리다는 것이었다. 딸은 다섯살때 남동생을 본 그때부터 다 큰 맏딸이었다. 무엇이든 양보하고, 참고, 잘해야 했다. 늘 동생보다 5년이 컸고 초보 엄마의 실습대상이었다. 잘하는 것은 당연했고 못한 것만 혼을 냈던 내게 이 여행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주었다. 딸은 아직 충분히 어렸고, 어린 사춘기 딸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니 우린 잘 맞는 한팀이 되었다. 하나의 작은 생각이 모든 것을 바꿔주었다.
이 일을 계기로 둘째에게는 조금 더 베테랑이 되었다. 굳이 유럽까지 가지 않아도 Chris Tomlin의 공연에 공연티를 사 입고, 아들과 찬양을 손들어 목청껏 부르면서, 아들의 농구경기에서 두 손에 땀을 쥐고 응원을 하면서 우린 또 잘 맞는 한팀이 된다.
딸과 둘이 갔던 유럽이 간혹 영화 배경으로 나올 때, 라디오에서 Chris의 찬양이 나올 때, 어느새 나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둘 만의 비밀이 생긴듯이 말이다.
이제 대학 1년을 잘 마친 딸을 데리러 간다. 혼자 짐을 싸서 창고에 맡기고 와도 좋으련만 꼭 아빠가 와야 한다고 한다. 남편이 그렇게 키운걸 어찌하느냐고 불평을 하는 내게 ‘오라 그럴 때가 행복한 때야’라고 선배는 귀띔을 해준다
함께한다는 건 시간과 공간을 나누는 것인가 보다. 그곳이 비록 뒷산이고 차 안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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