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전문 약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였다. 처음에는 참 어색하고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었다. 그때만 해도 젊은 나이였고, 아이들도 어려서 죽음이라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가끔 암 말기 환자들이 2달 살 수 있다는 진단소식을 들으면 참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신만이 알 수 있는 것을 인간이 함부로 내뱉을 수 있을까, 화도 나고 마음이 조이도록 아팠다.
암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떤 환자는 암 진단을 부인하고 절대 암에 지지 않겠다며 필요 이상의 치료를 받는다. 또 어떤 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를 받아들이고 의사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항암치료를 열심히 받는다. 그것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희망을 잃은 일부 환자들은 자신에게 발병한 암의 원인이 마치 타인 때문인 것처럼 화를 내며 발버둥친다. 또 어떤 환자들이 믿지 않았던 신을 찾기 시작하고 믿었던 신앙을 다시 회복하며 살게 될 것이라는 소망을 품는다. 천당이나 극락을 가겠다거나 또는 내가 믿는 신을 따라가겠다는 환자는 거의 드물다. 결국 투병을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 더 머무르고 싶다는 본능을 보인다.
그중 60대 중반의 아주 조용하고 아름답고 우아한 환자였던 로스메리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몇 달 암 치료를 받는 동안 우리 팀들과 가까워졌다. 어느날 잠시 약국을 비웠다가 돌아오니, 한 간호사가 서글픈 표정으로 “애연아, 방금 로스메리가 의사 방에서 나왔는데 이제 2달 남았다고 했대” 하는 것이었다. 처음 이런 소리를 들어본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 줄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때 그를 위로해줄 적절한 말이 하나도 떠오르질 않았다.
잠시후 정원을 지나칠 때 그 여인이 벤치에 앉아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용감하게 다가가 그의 앞에 섰다.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로스메리 미안해”라고 했다. 그러나 로스메리는 환한 미소로 올려다보며 “괜찮아, 나는 내 아버지 집에 갈 준비가 다 되었어” 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날 그의 평화롭고 편안한 모습은 내 머릿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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