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세 행복연구원 길라잡이 칼럼리스트 주대식씨가 중앙일보에 “제사”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쓰신 것을 읽었다.(2013년 3월 2일) 얘기의 시작은 어느집에 용모가 뛰어난 예쁜 며느리가 들어왔는데, 처음에는 시아버지가 기쁘고 마음이 뿌듯했는데 결국 종교문제로 부딪히기 시작했는데 기독교에서 말하는 한 이단에 소속된 그녀는 제사참여를 절대 거절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국에 흔히 있는 전형적인 기독교 신앙과 제사문제의 부딪힘의 케이스이다. 유교의 배경을 가진 우리 민족이 드리는 제사를 토기한국기독교에서 귀신에게 절하는 것이라고 해서 금함으로써 빚어진 많은 불행한 사례들을 우리는 지금까지도 보아오고 있다.(본인의 ”기독교 관점에서 본 효(孝)” 후기 참조. 5/2/2013, 한국일보기교)
이와 관련된 “죽은자 숭배”, “조상숭배”, “우상숭배”, “한국의 제사” 문제 그리고 그들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대안을 간추려 정리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어떤 인류학자들은 문명이 지혜로운 문명인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첫번째 요소가 <죽은 이들에 대한 숭배>라고 본다. 지금까지 조사된 기록에 따르면 사자 숭배가 가장 먼저 행해진 것이 7만년전 구석기 시대 중기였고 당시 몇몇 묘혈에 매장하기 시작하며 죽은자 숭배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짐승 같은 삶을 사는 것과 인간답게 사는 것의 획을 긋는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본다.
한국 제사제도의 시작을 서울대 사회학교수 송호근씨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성리학을 개국이념으로 택한 조선의 건국세력은 불교탄압과 함께 민간의 주술신앙과 음사(淫祀)를 엄격히 금지했다. 소격서를 세워 무당과 무격을 내쫓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조상과 하늘을 들어 앉혔다. 제례(祭禮)와 제천(祭天)이 그것이다. 경복궁 좌측에 종묘를 지어 조상숭배의 기초를 마련하고 우측에 사직단을 지어 곡식단과 토지신에 길운과 풍년을 빌었다. 조선법전이 [경국대전]에 제사 규칙을 정해 반포했다. ‘6품 이상은 3대봉사, 7품이 하는 2대, 서민은 부모제사만 지낸다’. 먹을게 없던 시절, 빈곤한 서민은 위패에 절하는 것으로 족했고 제수(祭需)는 형편에 따랐다. 그런데 가문과 문벌의 위세 경쟁이 격화됬던 조선후기 봉제사는 문중대사, 가족의 최대행사로 변질 됐다. 1년 20회 정도 제사를 행하지 않으면 양반이 아니었던 당시의 풍조에서 신분향상을 열망했던 서민들도 제례 경쟁에 뛰어 들었던 것이다.”이 글에서 우리는 제사제도에서 조상신의 신격화 과정(더 정확히 신과 동등시함)과 사회신분제도가 뒤얽힌 제사제도의 허망함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이어서 조선이 역사에 묻힌 마당에 통치 이데올로기 시행 방식이었던 제례의 의미도 소멸됐다고 보며 특히 그 후에 동학 창시자인 최제우는 제서 간소화를 주장해 네발 짐승의 고기를 금하고 국, 밥, 나물 정도만 권했으며 2대교주 최시형은 아예 청수(淸水)만 올리도록 했고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던 점을 감안 이제 제사의 미와 방식을 다시 고려할 때라고 주장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선교를 받을 때부터 아마 선교사들의 가이드라인을 정할 때 조상숭배와 제사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정함으로 불신자 가정에서 핍박을 받아 가면서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 전통을 고수해 왔다. 불행히도 일본의 압제 밑에 신사(神社)(역대천황의 영들과 조상들의 영들을 제사하는 사당) 참배에 가담했던 한국 굴지 교단(1938년 9월,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받아 들이기로 가결)이 있기도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 제사를 철저히 교회법이나 전통으로 막았던 것이다.
과학문명이 고도로 발달되어 달나라에 여행갈 계획을 세우며 다른 행성의 신비가 하나, 둘 벗겨지는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 가운데 얼마나 제사를 지내며 조상귀신이 왔다가는 것을 믿고 조상신을 우상화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내 어렸을 때 제사 경험으론 그런 종교적 개념은 배운적도 없고, 큰절도 조상님들께 세배드리는 정도의 존경심뿐이었고 관심은 1년에 한두번 먹는 고깃국과 맛있는 음식에 쏠려있었다. 이제 제사의 미를 다시 정립할 때가 되었다. 명절이나 선조기일에 산소에가서 벌초도 하고 꽃도 꽂고 ‘큰절’을 한다해도 그 의미나 동기가 생전의 선조를 기억하며 설날에 절하듯 인사나 존경과 예의를 갖춘 의미라면 우리의 아름다운 풍습으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가진 기독교 예배와 대립되는 행위가 안될 것이다. 얼마전 서울 모 성당에서 제사상을 차린 것으로 기독교계에 왈가왈부 논쟁이 오간 일이 있었다. 자세한 의도와 내용을 조사히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성당 신부님이 귀신을 영접하기 위하여 제사상을 차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사의 참된 의미는 우리의 뿌리가 되는 선조를 공경하고 감사하며 그 분들이 살아계셨을 때 그들의 희생을 기리면서 가족간의 유대를 다시 공고히 하는 것일 것이다. 처음에 언급했던 이단에 소속되었던 새 며느리가 이 모든 점을 알아서 시부모님과 대화하고 옳은 길을 모색했더라면 가정불화가 아닌 보다 화목한 가족 간의 유대가 이루어지는 제사를 드릴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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