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6월25일 아침 나는 동네 팀과 서울문리대 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하고 있었다. 시합 시작한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난데없이 지프 한 대가 지나가며 스피커로 “휴가 나온 국군장병들 즉시 귀대하시오…”를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도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 후부터 시내 쪽에서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 북쪽 미아리고개 방향으로 열댓 명이 탄 트럭이 간간이 지나가는데 군복보다 평복 차림의 젊은이가 대부분이고, 총 같은 건 안보이고 몇몇은 주먹을 흔들며 뭔가 외치고 있었다. 그제야 무슨 일이 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전에 집에 돌아오니 육군 소위인 사촌형이 집에 나타나 38선에서 가끔 있는 총질이 또 일어난 모양인데 별거 아닐 거라며 예정보다 일찍 귀대한다고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다. 육사 8기생으로 개성지역 38선에 배치되어 있던 형은 그동안 소규모의 전투를 가끔씩 치르던 중 부상을 입어 서울 육군병원에서 치료받고 회복해 곧 귀대하려던 참이었다.
그렇게 떠난 형은 그길로 마지막이었다. 개성 근처에도 못가고 쫓겨 오는 잔병들과 함께 싸우며 후퇴하고, 전세가 바뀌어 수도사단의 동부전선에서 원산 함흥까지 북진했다가 다시 퇴각하고, 또 한번 부상을 입은 그는 대구 육본에 배치되었으나 기어이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 철의 삼각지 어느 고지를 뺐고 빼앗기는 전투에서 전사했다. 휴전 약 한달 전이었다. 그의 부하가 유해를 우리가 피난가 살던 부산집으로 가져와 전쟁 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치했고 서울에 돌아온 후 형의 부하 특무상사가 찾아와 형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 학생들의 70%가 6.25를 북침으로 안다니 안타깝다. 그들은 이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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