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 베리가 쓴 ‘인간의 대지’에 기요메란 친구의 조난 이야기가 나온다. 기요메는 항공우편을 배달하는 비행기 조종사인데 기상이변으로 비행기가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에 불시착하게 된다. 그와 연락이 끊어지자 친구들과 가족들이 구조 비행선을 띄우고 찾아보지만 광활한 안데스 산맥에서 눈보라까지 몰아치는 계절에 기요메를 찾기란 불가능하였다. 날짜가 하루 이틀 지나자 모두 기요메가 살아서 돌아오리란 희망을 버린다. 그 시간 기요메는 동상으로 얼어붙은 발과 허기와 추위 속에서 더 앞으로 걸어가지 못하고 쓰러진다.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 기요메를 일으켜 세운 건 가족이었다. 죽더라도 발견되기 쉬운 큰 바위 위에서 죽어야 발견되어 사망신고를 할 수 있고 그래야만 가족들이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생각에 눈앞에 놓인 바위까지만 가자, 그런 마음으로 사지를 건너 조금씩 걷다가 결국 구조되었다.
기요메를 살린 건 가족에 대한 책임이었고 그런 마음가짐은 자기 앞에 놓인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자기 인생을 알뜰살뜰하게 성실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을 가끔 만난다. 어느 자리에 있든지 표나게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모임이나 단체가 매끄럽게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하는 분들도 다 이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땅에 두 발로 단단히 서 있는 느낌을 주고 그래서 허황되지 않고 겉돌지 않는 매력이 있다.
십년 전에 만난 사모님 한 분도 그런 분이었다. 결혼해서 막 남편 목사님과 함께 유학왔는데 나 같은 아줌마가 보기엔 정말 풋풋한 새댁 같은 분이었다. 그러나 전공을 살려서 음악대학원에 당차게 진학도 하면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게 보였다. 그 후로 난 멀리 이사를 하게 되었고 가끔 들리는 이야기에 부모들이 믿고 찾는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 그 사모님을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다. 자기 이름을 건 음악회에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한 모양이었다. 간단한 근황과 흐릿한 흑백 사진이었지만 신문에 실린 모습을 보니 반가웠다. 당장 전화해서 안부를 물으려다가 나중으로 미뤘다. 왠지 지금은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안부전화 없이도 이미 몹시도 충실히 잘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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